▲ 최용수(왼쪽)가 5년간의 J리그 생활을 접고 FC 서울 플레잉코치로 오게 되면서 고정운 수석코치와 한솥밥을 먹게 됐다. 98년 월드컵 대표팀에서 처음 만나 한눈에 ‘같은 과’임을 알아봤다는 그들의 끈끈한 인연이 이제 다시 시작된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대표팀에서 둘도 없는 선후배 사이로 오랜 친분을 유지한 두 사람은 이젠 프로팀에서 또 다른 인연 맺기로 세월의 흐름을 같이 호흡하고 있다. 올시즌 성적에 대해 엄청난 부담과 기대를 안고 있는 두 사람을 지난 2일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고정운 코치한테는 ‘고 코치’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웠지만 최용수한테는 코치라는 호칭이 영 어색하기만 했다. 플레잉 코치라는 타이틀 자체가 선수와 코치를 병행하는 역할이라 ‘최 코치’도 맞고 ‘최용수 선수’도 맞는 셈이었다.
선수 시절 강한 성격과 카리스마로 후배들이 쉽게 접근조차 못했다는 고정운 코치와 ‘쎈’ 이미지에선 결코 빠지지 않는 최용수의 조합이 흥미롭기만 하다. 대표팀을 제외하곤 한 팀에서 뛰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별다른 인연이 없을 것 같았지만 98월드컵 이후 ‘최-고 코치’는 오히려 경기장 밖에서 끈끈한 연을 맺어가며 홍명보(대표팀), 황선홍(전남) 코치 등과 ‘찐하게’ 어울렸다.
두 사람한테 상대의 첫 인상을 물었다. 워낙 강한 이미지로 대변되는 탓에 각자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내심 기대가 됐다. 먼저 고 코치가 말문을 열었다.
“(최)용수 성향이 ‘우리들 과’에 속하는 스타일이라 대표팀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왠지 끌렸어요. 특히 97년 월드컵 최종 예선전을 치를 때는 워낙 용수가 팀 공격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탓에 대형 스트라이커라는 인상이 강했죠. 그때는 (황)선홍이보다 더 가능성이 많았으니까.”
선배의 ‘띄워주기’에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최용수도 이렇게 ‘접대 멘트’를 날린다.
“고 코치님한테는 배울 점이 너무 많았어요. 선수 시절 때는 한국 축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분이잖아요. 스피드와 체력, 기술, 그리고 마지막 센터링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어요. 선수들 사이에서도 최적의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될 정도였죠.”
최용수의 말을 듣고 있던 고 코치가 심히 민망하다는 듯이 이런 말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너 왜 그러냐? 솔직하게 말해. 편하게 하라니까.”
“97년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된 후 마지막 남은 경기가 아랍에미리트와의 원정 경기였어요. 용수는 부상 때문에 제외됐고 난 뭐 그냥 빠졌고 그랬죠. 타워호텔에서 뻘쭘하게 있는데 용수가 내 방에 와선 소주나 한 잔 하러 나가자고 얘기하더라구요. 후배가 선배한테 먼저 다가가기가 어려운데 용수는 달랐어요. 선배 입장에선 그런 후배가 미울 수가 없죠.”
▲ 고정운 | ||
최용수는 일본 생활 도중 귀국할 때마다 고 코치한테 안부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지난해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도 예비 신부와 함께 고 코치를 찾아가 인사하는 걸 잊지 않았을 만큼 고 코치를 믿고 따랐다.
고 코치가 걱정하는 부분은 최용수한테 붙어 있는 플레잉 코치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타이틀이다.
“내 경험으로 보면 은퇴 시기란 분명히 있어요. (황)선홍이도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지만 선수 생활에 대한 욕심이 커 독일로까지 건너가 수술을 받았잖아요. 그때 독일에선 장애 진단을 내렸을 정도였어요. 선수 생활 연장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소리였죠.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어요. 용수 마음은 이해하지만 어차피 지도자를 꿈꾼다면 하루 빨리 ‘플레잉’ 버리고 ‘코치’로만 생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봐요.”
그러나 최용수는 이런 고 코치의 생각과 조금은 다른 입장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역할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선 어느 정도의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까지 내 자신은 플레잉코치라는 자리에 익숙해 있지 않아요. 선수로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 보여준 다음 은퇴하고 싶어서 어렵게 결정했는데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신기한 건 조금씩 시간이 지나니까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축구가 재밌고 즐거워지더라구요. 고 코치님이 ‘그냥 즐기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시거든요. 그게 정답일 것 같아요.”
고 코치는 훈련할 때와 시즌이 시작돼서 경기를 치를 때와는 최용수의 상황이 여러 가지로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금은 여유를 갖고 훈련에 임할 수 있지만 운동화가 아닌 축구화 신고 벤치에 앉아 있다 보면 당장이라도 그라운드에 뛰어 들어가고 싶은 욕구 때문에 감정 조절에 애 먹을 것이란 설명이다.
최용수로선 박주영 정조국 김은중 등 어린 후배들과 경쟁을 벌이는 데다가 코치의 입장도 있기 때문에 후배들과 자리 싸움만 할 수도 없는 어려운 처지다.
“단 1분을 뛰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어요. 후배들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 자린 내가 차지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여야죠. 플레잉 코치이기 때문에 무조건 경쟁만 할 수는 없어요. 그걸 적절히 조절하는 건 내 몫이에요.”
최용수 입장에선 박주영 백지훈 정조국 등 나이 어린 선수들과의 조합이 ‘선수’로서 풀어야할 가장 큰 숙제다. 어쩌면 경기장 안에서보다 밖에서 어떤 호흡과 이해를 갖고 가느냐에 따라 팀 성적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에 대해 고 코치는 강한 어조로 이런 내용을 털어놨다.
“FC 서울은 선수 개인의 팀이 아니에요. 박주영 팀도, 백지훈 팀도 아니죠. 대표팀 선수들만이 팀을 위해 뛰는 건 더더욱 아니구요. 오히려 대표팀에 들지 못한 선수들이 더 열심히 할 수도 있어요. 올시즌 용수 역할이 커요.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잘 해야 하니까요. 또 후배들 보다 더 좋은 모습도 보여줘야 하구요. 그래서 플레잉 코치라는 자리가 어려운 거죠.”
최용수는 지난 1월 키프러스 전지훈련이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코칭스태프가 얼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보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 최용수 | ||
고 코치의 ‘반성’도 이어졌다.
“한 마디로 ‘꼴통’ 짓 많이 했죠. 그런데 그런 선수들이 운동도 잘 해요. 오히려 아무 반응이 없는 선수들이 문제예요. 프로팀 코치를 맡아 보니 요즘 선수들이 너무 이기주의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동료애도 없고 팀을 사랑하거나 희생하는 부분도 찾기 힘들어요. 삭막하기까지 하더라구요. 내가 운동할 때는 경쟁은 해도 운동 끝나면 아주 끈끈한 뭔가가 있었거든요.”
지난 3월 1일 앙골라와의 평가전을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직접 관전한 ‘최-고 코치’는 2006 독일월드컵에서 한국팀의 예상 성적을 16강 이상으로 내다봤다. 고 코치는 “신구의 조화가 잘 돼 있는 것처럼 보였다”면서 “선수들 경기력은 아드보카트 감독이 보는 눈이나 이장수 감독이 보는 눈이나 똑같다. 경기력을 상승시키기 위해선 소속팀에서도 열불나게 뛰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용수도 “하고자 하는 선수들의 의지가 대단해 보였다”고 전하면서 “단지 걱정되는 부분은 경기에 못 나가는 선수들이다. 그러나 (홍)명보 형이 이 부분을 잘 커버할 것이다. 게임은 11명만 뛰는 게 아니라 벤치에 있는 12명의 선수들도 함께 뛴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용수는 2002년 월드컵의 아픔에 대해서도 훌훌 털었다고 말한다.
“내 복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때는 너무 아팠지만 그 아픔을 겪고 나니까 새로운 길이 보였어요. 만약 그때 잘 풀렸다면 런던이나 마드리드에서 와인이나 마시고 있었을 걸요? 하하”
저녁을 먹으며 진행된 인터뷰에서 ‘최-고 코치’는 서로 지지 않는 입담을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그대로 옮겨본다.
고: 용수야, 너 내일 운동 쉴래? 힘들다면서.
최: 정말요? 와~ 이거 완전 보너스네.
고: 근데 운동은 쉬어도 운동장엔 나와야지.
최: 왜요? 쉬라면서요?
고: 야, 운동은 쉬어도 넌 코치잖아. 벌써 잊었어? 나와서 잔디 상태도 체크하고 선수들 컨디션도 점검하고.
최: 에이, 나와서 마사지나 받아야겠다.
고: 무슨 소리야? 마사지는 선수들부터 먼저 받는 거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