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3년 월드컵스타로 우뚝 선 뒤 박지성 집 그의 방에서 인터뷰 할 때 모습. 뒤로 상패와 메달이 보인다. | ||
지성이가 고3 때 열린 강릉의 축구대회에서 수원공고가 모처럼 준결승에 진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과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 뒤 선수단 식사를 챙기다가 뒤늦게 학부모들이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장난이 아니었다. 몇몇 선수 부모들이 지성이가 주전으로 뛴 문제를 놓고 딴지를 걸었고 총무인 내가 감독과 친하다는 이유로 지성이가 특혜를 받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 놓고 있었다.
그들과 입씨름을 하기 싫었지만 계속해서 이상한 ‘스토리’로 몰고 가는 그들의 언행에 그동안 참았던 분노가 폭발했고 난 총무 일을 그만두겠다고 큰소리를 치곤 밤 12시에 숙소를 뛰쳐나와 곧장 터미널로 향했다. 두 시간을 넘게 터미널을 찾아 헤매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지성이 때문에, 또 감독 얼굴 생각해서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고 꾹 참고 참았던 마음의 ‘찌꺼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졌고 그게 한으로 남아 내 감정을 분출시킨 모양이었다.
지치고 힘든 상태에서 터미널에 도착했지만 이미 막차는 떠나버렸고 어쩔 수 없이 난 터미널 대합실에서 동이 틀 때까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이때 터미널에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거듭했다. ‘이런 모욕과 모함을 참아가면서까지 계속 축구를 시켜야 하나’하는 고민 속에서 마구 허우적거렸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을 정도다. 그후 지성이가 잘 될 때마다 난 당시의 부모들이 생각났고 지성이가 맨유에 입단했을 때는 그들한테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내가 퍼거슨 감독에게 돈 써서 지성이를 맨유에 보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다 나와 봐!!!”
고등학교 시절, 감독에게 잘 보이려고 ‘검은 돈’을 썼다고 날 모함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게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지성이가 잘 풀릴 때마다 꼭 그렇게 되묻고 싶었던 것이다. 난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만 단 한 번도 돈으로 감독을 사로 잡은 적이 없었다. 단 정육점을 운영했기 때문에 명절이면 일 년에 두 차례씩 고기로 선물을 대신했었다.
내가 수원공고의 이학종 감독을 정말 존경했던 부분은 당시 훈련비를 내지 못한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제외시키지 않고 끝까지 챙겼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들은 모두 대학에 들어갔고 이 감독은 다른 감독과는 달리 양심적으로 팀을 운영했다.
고3 졸업을 앞두고 대학 진학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내가 지성이를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축구를 시켰던 가장 큰 목적인 대학 입학이 눈 앞에 다가온 것이다. 난 지방이든 수도권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저 지성이가 대학에만 갈 수 있다면 어디든지 오케이였다.
고등학교 때처럼 대학도 명지대는 의외의 카드였다. 수원공고와는 전혀 연고가 없던 상태였고 학교 측에선 내심 다른 대학을 점찍고 있다가 명지대로 가겠다고 하자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난 선택을 했다기보단 선택을 받은 것이다. 당시 명지대 감독을 맡고 있던 김희태 감독이 지성이의 플레이를 유심히 지켜봤었고 체력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은 아이였지만 뛰어난 팀 플레이와 탐나는 스피드에 큰 점수를 줬다고 한다.
화제를 잠깐 돌려보겠다. 지성이가 고2 때 IMF를 맞게 됐다. 당시 훈련비를 내지 못할 만큼 경제 사정이 아주 안 좋았다. 그래도 지성이 엄마는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마련해 왔다. 대학 입학 후에도 그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6개월 동안 가게 문을 닫은 적이 있어 더 이상 좋아질 리가 만무했다. 집안의 가장이었지만 지성이만 뒤쫓아 다녀 집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얼마나 힘든지 잘 몰랐다. 지성이 엄마가 마치 ‘은행’처럼 돈이 필요할 때마다 내놓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지성이가 대학 2학년 때 교토 퍼플 상가로 옮겨가면서 지성이 엄마의 고백을 들을 수 있었다. 빚이 자그마치 2000만 원이나 된다는 소리에 기절 직전까지 이르렀다.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펄펄 뛰며 불같이 화를 내자 지성이 엄마는 그동안 돈 내놓으라고만 했지 돈이 어디서 생겼는지 물어봤느냐고 울면서 하소연했다. 돈 빌려서 자식 뒷바라지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는데 현실은 정 반대였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