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힘든 시간을 견디고 또 견뎌왔던 이동국이었기 때문에 그가 쿠엘류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 처음 발탁됐을 때 기자도 가족처럼 기뻐하며 축하 전화를 해주었다. 이동국은 당시 대표팀 소집 차 파주트레이닝센터로 향하는 마음을 “어린시절 소풍을 앞두고 잠을 설쳤을 때처럼 너무나 설레인다”라고 표현했었다.
그리고 본프레레 감독을 거쳐 아드보카트 감독까지 이동국은 항상 대표팀의 중심에 자리했다. 포지션 경쟁을 벌이는 안정환이 오히려 이동국의 눈치를 봐야할 정도로 이동국은 4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성장했었다.
그러던 이동국이 2006년 4월 11일 인천공항에 다리를 절뚝거리며 나타났다(사진). 오른 무릎 십자인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국하기 위해서였다. 이동국이 기자들 앞에 서 있었던 시간은 10초도 채 되지 않았다.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오겠다”며 머리를 숙이고 출국장으로 향하는 이동국한테 기자는 그저 “힘내라”는 말 밖에 전하지 못했다. 10%의 희망만 있어도 좋겠다던 이동국은 결국 독일에서 수술 판정을 받았고 이번 월드컵에는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오래 전 김남일을 인터뷰했을 때 그는 2002년 월드컵 이후 이동국과 술을 마시면서 강남대로에서 대자로 뻗어 통곡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이동국과 절친했던 김남일은 이동국의 풀리지 않는 축구 인생이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이동국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며 이동국에 대한 진한 우정을 나타냈었다. 아마 이번에도 김남일은 대성통곡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냥 슬퍼하지만은 말자. 이동국 주변에는 그를 아끼고 좋아하며 응원하는 가족, 축구인들, 그리고 팬들이 흔들림 없는 지지를 보여주고 있다.
4년 전 외교관 신분으로 축구대표팀 미디어 담당관을 했었던 허진 씨(주 독일대사관 참사관)도 이동국의 소식을 전해 듣고는 “운이 없어도 너무 없다”면서 이동국의 처지를 심히 안타까워했다. 베를린에서 6시간 달려야 도착하는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직접 격려를 해줄 계획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로 떠나기 전 이동국이 자문을 구했다는 고정운 FC 서울 코치는 이미 이동국의 수술을 예견하고 있었다면서 “동국이가 길게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황선홍 전남 코치 또한 “축구 생명이 끝나는 게 아니니까 절망보다는 희망을 갖자”며 분신처럼 아꼈던 후배 이동국에게 용기를 전했다.
잃은 게 많은 이동국이다. 그러나 이번 일로 얻은 것 또한 많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동국의 얼굴에 그늘이 없어질 날을, 그래서 활짝 웃음꽃이 필 날을 기다려본다. 기자가 아닌 팬으로서 말이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