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총장 궐석이 길어짐에 따라 한국 프로야구 행정을 총괄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직원들은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며 후임 사무총장 인선에 은근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KBO는 일단 오는 5월 3일 정식 이사회를 열고 후임자 인선을 매듭지을 예정이다. 하지만 앞으로 KBO는 열흘 남짓 총장직을 놓고 한바탕 소용돌이가 일 것으로 보인다.
KBO는 지금 낙하산 논란 끝에 새 선장(총재)이 키를 잡았지만, 선원을 지휘할 갑판장(총장)이 없는 형국이다. 야구계 일각에서는 차제에 ‘야구인’ 출신이 KBO를 접수, 장악해야 한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해 직원들의 심기를 불편케 하고 있다. 심지어는 사무차장 이하 운영부장, 기록위원장 등 팀장급 인선 하마평까지 나돌 정도로 어지럽다. 정작 신상우 총재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정중동, 숙고 중이다.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신 총재의 ‘장고’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주변에서는 어림짐작하고 있다. 일반적인 관측은 적임자 부재론이다.
KBO는 지난 4월 3일 이사회를 열고 신상우 총재 내정자를 추인했다. 이미 신임 신 총재가 실질적인 총재 권한을 행사해 온 터라 그날은 형식적인 행정 절차를 밟은 데 불과했다. 정작 야구계의 관심은 이상국 전 사무총장의 연임 여부에 쏠려 있었다. 예측과는 달리 이상국 전 총장은 하차했다. 바로 다음 날인 4일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신 총재가 이사회 석상에서 후임 사무총장을 천거, 8개 구단 사장단(KBO 이사들)의 동의를 얻어 구단주의 재가를 받으면 임명 절차가 끝나도록 돼 있었으나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 신상우(왼쪽), 이상국 | ||
박용오 전 KBO 총재가 두산 그룹 ‘형제의 난’ 파동으로 작년 12월 11일 골든글러브 행사를 끝으로 물러난 다음 이 씨의 동반 사퇴론이 떠돌기는 했지만 이사회를 앞두고 지난 3월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연임이 유력해진 터였다.
이상국 전 총장은 3월 31일 친분이 있던 모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시끄럽던 주변 정리가 다 됐다”며 사실상 연임이 결정됐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4일 오후 신상우 총재를 면담한 다음 그는 돌연 물러났다. 야구계 일각에서는 그 과정에서 무언가 걸림돌이 생겼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았다. 신 총재가 이사회 전날만 하더라도 이 씨와 함께 갈 것이라는 언급을 한 데 비추어보면 뜻밖의 결과였다.
이 씨의 도중하차(엄밀하게는 임기 만료)를 보는 시각 가운데는 정치적 배경과 연계시켜 풀이하는 사람도 있어 눈길을 끈다. 즉 이 씨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골프 사태로 인한 낙마와 고교(광주 살레시오고) 선배인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의 경질 등이 이 씨의 연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그 동안 총장 후보로 베테랑 방송 해설위원들이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최근에는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신 총재가 지난 4월 5일 기자 간담회 석상에서 “건강한 사람이 총장을 맡아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주변에 여러 가지 뒷말을 낳게 했다.
이 와중에 한국프로야구 선수협회는 ‘야구인 출신이 사무총장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표명, ‘야구인 출신’의 범주를 놓고 야구단과 마찰도 일고 있다.
수도권 구단의 모 사장은 “반드시 야구인이 사무총장이 돼야 한다는 주장은 수긍할 수 없다. 야구인 가운데 똑똑한 분이 있으면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누가 되든 간에 행정 능력이나 마케팅 능력, 진취적 사고를 갖춘 분이면 바람직한 것이 아니냐”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는 또 “현재 KBO는 지나치게 비대해져 있다.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구단을 끌고 가려는 자세는 곤란하다”며 견제구를 날렸다.
이와 관련 KBO 이상일 사무차장 또한 “팀장급 직원들은 낙하산도 아니고 엄연히 공채 과정을 거쳐 KBO에 들어온 인력들”이라며 “경기인이 맡아야 한다는 선을 왜 긋는지 알 수 없으나 어떤 능력의 소유자인가가 중요한 잣대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무총장의 인선 기준에 대해 드러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역대 KBO 총장은 주로 정치권 낙하산 총재들의 입김에 좌우돼 이를테면 총재와 코드를 잘 맞출 수 있는 인물들이 주로 낙점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감각을 바탕으로 산적한 현안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인물이 선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KBO 사무총장은 어떻게 보면 총재와 러닝메이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총재와의 코드 맞춤이나 지연이나 학연에 따른 선임 등 구시대적인 작태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홍윤표 OSEN 야구 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