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코바르 | ||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 먹은 대로 될까.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다 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기 골문에 볼을 집어 넣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곤 한다.
첫 대회부터 지난 98년 프랑스 대회까지 월드컵 본선에서 터진 골은 총 1천7백55개, 그중 자책골로 기록된 것은 모두 22개다.
이중 제1호는 1930년 우루과이에서 열린 첫 대회에서 파라과이의 곤잘레스 선수가 미국전에서 기록한 것이다.
개막경기에서 자책골을 기록한 것은 98년 프랑스 월드컵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첫 날 두 경기 모두에서 자책골이 나온 것. 톰 보이드 선수의 자책골로 스코틀랜드는 브라질에게 1 대 2로 패했고, 이어 벌어진 모로코와 노르웨이전에서는 모로코의 유세프 시포 선수의 어이 없는 자책골로 무승부로 끝이 났다.
역대 ‘자책골 대회’로 불리며 가장 많은 자책골이 기록된 경기는 54년 스위스 대회와 98년 프랑스 대회. 각각 4개씩이 기록되었다.
반면 자책골이 단 한 번도 터지지 않았던 대회는 34년 이탈리아대회, 50년 브라질대회, 62년 칠레대회, 70년 멕시코대회, 90년 이탈리아대회 등 모두 5개 대회였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난 프랑스 대회 초반에 자책골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해프닝이 벌어지자 서둘러 자책골의 범위를 제한하는 새로운 규정을 세운 바 있다. 즉 자책골인지 아닌지 아리송할 경우에는 ‘수비수의 공격가담 정도로 결정한다’는 것.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단순히 수비수의 몸을 맞고 골이 터진 경우에는 자책골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98년 프랑스대회에서 우리나라의 하석주 선수가 멕시코전에서 프리킥으로 뽑은 월드컵 사상 첫 선취골도 처음에는 자책골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했지만 뒤늦게 혐의를 씻은 경우. 당시 수비벽을 쌓고 있던 멕시코의 다비노 선수의 머리를 맞고 골이 났기 때문에 엄밀히 따져선 자책골이었지만 수비수가 능동적으로 볼을 처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하석주 선수의 골로 인정되었다. 하지만 선취골에도 불구하고 당시 우리나라는 멕시코에 1 대 3으로 역전패당하면서 첫승의 꿈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자책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난 94년 미국월드컵에서 자책골을 기록했던 콜롬비아 안드레아 에스코바르 선수의 비극이다. 이 자책골로 당시 콜롬비아는 미국에게 1 대 2로 패해 16강 진출에 실패했으며, 자연히 모든 비난의 화살은 에스코바르 선수에게 집중되었다. 고국의 차가운 냉대 속에 집으로 돌아온 에스코바르 선수는 결국 고향의 술집 주차장에서 4명의 괴한들에게 총으로 난사당하고 말았다. 뒤늦게 밝혀진 바에 의하면 범인들은 거액의 내기돈을 걸었다가 쫄딱 망했던 마피아 조직의 일원이었으며, 단순히 화풀이를 하기 위해 일을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책골이 터진다면 응원하는 팬들이나 같은 팀 선수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다행히 경기 결과가 좋다면야 문제 될 것이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해당 선수는 대회가 끝날 때까지 내내 죄인처럼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지나간 일은 잊고 남은 경기에 최선을 다한다면 보다 뛰어난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