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5회 연재를 약속하고 시작한 ‘별들의 탄생 신화’ 박지성 편이 10회까지 달려왔다. 여전히 쓰고 싶고 담고 싶은 내용이 많지만 알맹이만 간추려서 마무리지으려 한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씨의 사연 많은 뒷바라지 스토리, 그 마지막 내용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좋게 표현해서 개성이 강하다. 나쁘게 표현하면 ‘성격이 뭐 같다’고 표현해야 하나. 하여튼 지성이와 같이 뛰고 있는 웨인 루니나 로이 킨 등은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성격이 종종 장외에서도 드러날 때가 있다. 그러나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 개성이 있기 때문에 축구를 잘하는 거라고 굳게 믿는다. 그렇다면 지성이는 어떨까. 만약 지성이가 실력도 별로면서 성질머리가 사나운 선수였다면 동료들과 어울리는 데 많은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성이는 동양에서 온 선수이기 때문이다. 출신 성분이 다른 선수는 무조건 실력부터 보여주고 붙어야 한다.
어느 경기에서 퍼거슨 감독이 지성이를 딱 1분 출전시킨 적이 있었다. 그때 지성이는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순순히 감독의 지시를 따랐다. 아마 다른 선수였다면 어떤 형식이로든 불만을 표출했을 것이다. 4분 뛴 적도 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부동 자세를 취하고 시청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제 지성이가 안 뛰었대?’하고 아침 인사를 건넸을 것이다. 지성이가 출전하는 걸 눈 빠지게 기다리다가 막판에 잠든 사람들 대부분도 그렇다^^.
내 아들이지만 자랑 좀 해야겠다. 지성이의 장점은 성실하다는 것, 감독 말에 무조건 순종한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타고난 성품도 있겠지만 교육 받은 부분도 크다. 특히 어린 나이에 외국 생활을 하면서 몸으로 터득한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리 자유분방한 외국인 감독이라고 해도 공손하고 성실한 선수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히딩크 감독도, 지금의 퍼거슨 감독도 마찬가지다.
지성이 선배들이 결혼하는 걸 보면서 은근히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축구를 잘하는 게 중요하지만 결혼을 잘하는 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이건 내가 만들어 줄 수 없다.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 박지성이 공항에서 여성팬과 폰카로 사진을 찍고 있다. | ||
본의 아니게 스캔들 아닌 스캔들로 신문 지상을 장식하기도 했지만 이젠 스캔들이 아닌 진짜 여자 친구가 지성이에게 존재해야 한다. 운동장과 집만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반복하는 건 축구를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을 하는 것이다. 가끔은 그런 지성이가 불쌍할 때도 있다(만약 지성이가 이 글을 읽는다면 아버지 말이 빈 말이 아니라고 믿었음 좋겠다).
언젠가 한 번은 지성이랑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이냐를 놓고 깊은 대화를 나눴었다. 지성이는 성격상 프로팀 감독이나 코치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행정가 수업을 받으면서 유소년들을 상대로 직접 축구 지도를 하고 싶어 하는 꿈이 있다. 어린 선수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축구를 놀이처럼 즐기면서 함께 뒹굴고 훈련하는 ‘그림’들이 지성이의 마음 속에 깊숙이 자리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은퇴하고 나면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안 도와주니까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서 은퇴 후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 교실을 만들어 보라고 말이다.
독일월드컵. 다음 주면 지성이도 귀국한다. 내가 넌지시 한국대표팀의 예상 성적을 물어 보니까 표정이 심각해진다. 16강 진출이 관건이라고 하면서. 16강에만 발을 들여놓으면 오히려 8강은 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4년 전 월드컵은 행복하면서도 너무 조바심을 내 아무 느낌도 없었다. 이번 월드컵은 한번 ‘느낌’을 갖고 싶다. 23명의 ‘내 아들’들을 응원하면서 말이다.
‘뒷바라지’란 주제를 가지고 그동안 지성이의 축구 인생에 내 인생을 얹어서 풀어봤다. 연재를 하면서 지난 일들이 뚜렷이 기억나 때론 행복하기도, 또 슬프기도 했었다. 앞으로 또 다른 ‘뒷바라지’엔 부모의 존재보다는 지성이의 동반자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만 할 것이다. 그땐 ‘고생 전담자’였던 내 아내와 손 잡고 축구 여행이나 다녀야겠다. 과연 그런 날이 언제나 올까.
다음 호부턴 일본 요미우리에서 활약 중인 이승엽 선수의 아버지 이춘광씨가 쓰는 '별들의 탄생 신화'가 연재됩니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