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C밀란에서 뛰고 있는 스위스의 미드필더 요한 보겔의 2004년 경기 모습. 로이터/뉴시스 | ||
사실 스위스는 한국 축구와 인연이 깊다. 한국대표팀이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오른 1954년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가 바로 스위스다. 날아가는 비행기 편이 부족해 선수단을 쪼개는 생이별을 해야만 했고 경기가 열리기 며칠 전 부랴부랴 도착해 시차 적응도 하지 못한 채 경기장에 나서야 했다.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어도 스위스는 우리 축구가 월드컵에서 첫 발걸음을 뗀 역사적인 장소인 것이다.
국가대표팀 경기인 A매치에서는 스위스와 한 차례도 격돌한 바 없다. 지난해 6월 네덜란드에서 개최한 U-20세계선수권을 통해 청소년대표팀 간에는 만난 바 있다. 신영록의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안티치와 볼란테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1-2로 역전패했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당시 멤버 중 양국의 2006월드컵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주인공들은 박주영, 백지훈, 김진규(이상 한국) 필립 센데로스, 요한 주루, 블레림 제마일리, 요한 볼란텐(이상 스위스) 등 모두 7명이다. 이래저래 우리와는 얽히고설킨 인연이다.
스위스전을 걱정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상대해보지 않았기에 장단점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 우려를 키운다. 2006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을 치르며 프랑스와 2무를 기록하는 등 무패 행진 끝에 본선행을 일군 스위스의 행보가 우리로서는 부담이다. 프랑스의 객관적인 전력의 우세가 점쳐지는 가운데 나머지 한 장의 16강 진출 티켓을 놓고 다퉈야 하는 상대인 까닭에 걱정이 더하다.
▲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에서 활약하고 있는 센데로스. 로이터/뉴시스 | ||
스위스가 이렇듯 발군의 조직력을 갖출 수 있었던 데는 코비 쿤 감독의 존재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스위스의 최종 엔트리를 살피면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2년 U-17유럽선수권 우승 멤버들이 성장한 것인데 바로 코비 쿤 감독의 작품이다. 오랜 세월 청소년대표팀을 조련했고 2001년부터 5년간 줄곧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다진 호흡이 스위스 특유의 끈끈한 협력망을 가능케 했다.
G조에 속한 프랑스가 2002월드컵 이후 로저 르메르, 자케 샹티니, 레이몽 도메네크 등 3명의 감독을 거쳤고, 한국 역시 쿠엘류,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감독 등으로 이어지는 ‘혼란의 시기’를 보냈지만 스위스는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수년간 유지해온 것이다.
스위스대표팀의 또 다른 강점은 월드컵이 열리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종엔트리 23명 중 7명이 독일에서 뛰고 있다.
수비수 필립 데겐(도르트문트) 루도빅 마그닌(슈투트가르트) 크리스토프 슈피허(프랑크푸르트) 미드필더 트란킬로 바르네타(레버쿠젠) 리카르도 카바나스(쾰른) 라파엘 비키(함부르크) 공격수 마르코 슈트렐러(쾰른) 등이다. 이 밖에도 수비수 필립 센데로스, 요한 주루(이상 아스널) 발롱 베라미(라치오) 미드필더 요한 보겔(AC밀란) 등 유럽 중에서도 빅리그라 불리는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리그를 누비는 선수가 여럿이다.
스위스는 이번 월드컵을 사실상 홈경기로 치를 수 있다는 점도 이점이다. 스위스와 독일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특히 한국과 스위스의 경기가 벌어지는 하노버는 스위스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두 시간 안에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깝다. 정보에 의하면 한국전에 3만 명 이상의 스위스 원정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