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박지성은 요즘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그에게 필요한 건 조용한 응원이 아닐까.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월드컵 전사들이 숙소로 이용했던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에서의 일이다. 박지성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김남일, 이을용 등과 함께 걸어 나오는데 식당 밖에서 삼삼오오 몰려 있던 대표팀 후배들이 이렇게 외친다.
“형, 저흰 형 다리만 믿습니다! 형, 잘 부탁드려요!”
농담처럼 던진 후배들의 외침에 박지성이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박지성이 대표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보니까 박지성의 부상 회복에 누구보다 관심을 기울이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박지성은 그들의 간절한 외침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더욱이 그들이 이번 월드컵을 통해 병역 혜택을 소원하는 선수들이라면 박지성의 부담 체감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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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방에는 축구공이 가득 쌓여 있다. 축구공이 기다리는 건 박지성의 사인이었다. 워낙 유명한 선수다보니 여기저기서 박지성의 사인을 요구하는 부탁이 엄청나다. 힘들어서 거절하고 싶어도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사인 요청은 끊이지 않는다. 팬 서비스 차원에서 기분좋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 수가 늘어나면서 박지성도 조금씩 지쳐간다. 아직도 사인 안 한 축구공이 스무 개나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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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사인 작업’을 마친 후 인터넷을 켰다. 여기저기 기사를 검색하다가 박지성은 눈을 감아 버렸다. 기사는 기사대로, 네티즌들은 네티즌대로, 또 축구팬들은 축구팬대로 박지성을 응원하면서 ‘당신을 믿습니다!’란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박지성은 세네갈전 이후 예상치 못한 항의 글을 접해야 했다. 박지성의 출전을 예상했던 팬들이 끝까지 박지성이 벤치에서 벗어나지 않자 축구팬들을 우롱했다는 비난의 글을 올렸다.
결론적으로 박지성은 아무런 죄가 없다. 죄라면 끝까지 박지성의 출전이 가능할 것으로 예견했던 방송사와 박지성을 보고 싶어한 팬들의 간절함이 아닐까. 박지성은 이날 김남일과 함께 예비 명단에조차도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
소화하기 벅찰 정도로 과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데 대해 부담을 잔뜩 껴안은 박지성이 어느날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우리가 16강 못 가면 귀국도 못할 것 같아요. 월드컵 열기가 과열돼 있어 걱정이에요. 저한테는 ‘조용한 응원’이 가장 필요한 데 말이죠.”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