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성 부친 박성종 씨(왼쪽)와 김영광 부친 김홍현 씨. | ||
두 사람은 58년 개띠로 전남 고흥에서 함께 자랐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같이 다니다 헤어졌지만 축구 선수를 아들로 둔 덕분에 25년의 시간이 흐른 뒤 결국 경기장에서 조우했다. 재미있는 건 남자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친구’라고 서로를 인정하는 두 사람의 와이프들도 59년생 동갑내기라는 사실.
오는 6월 11일 두 가족은 독일로 원정 응원을 떠난다. 이미 8개월 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준비해왔던 그들은 독일에서의 숙박, 경기 관전 및 관광까지 모든 ‘세팅’을 완벽하게 끝마쳤다고 한다.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두 선수 아버지들의 사연 있는 축구장 토크를 지상 중계한다.
김홍현(김): 어이! 성종이 친구! 해가 다 기울었는데 웬 선글라스? 새까만 사람이 선글라스까지 끼니까 참 보기가 거시기하네.
박성종(박): 내가 선글라스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냐? (박)지성이한테도 다른 건 몰라도 선글라스는 쓰고 다니지 말라고 부탁할 정도였어. 근데 왜 내가 쓰고 다니냐 하면 얼굴이 너무 알려지다보니 조금씩 불편해지더라구. 하긴 네가 내 사정을 알 겄냐? ‘세컨드’가 어찌 내 마음을 알꼬(김영광이 이운재에게 가려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것을 빗댄 농담).
김: 성종이 친구! 내가 자넬 가장 부러워한 때가 언젠 줄 알아? 바로 이번에 엔트리 발표하기 전날이야. 솔직히 말해서 자넨 지성이가 엔트리에 뽑히지 못할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잖아. 난 어땠을까? 올 초 해외 전훈에서 (김)영광이가 부상으로 한 게임도 뛰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는 바람에 엔트리 발표 전까지 불안과 초조가 극에 달했었다구. 더욱이 자네랑 독일 여행까지 계획해 놨는데 영광이가 탈락해서 내가 못 가게 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 발표 전날 걱정 근심이 없을 자네 입장이 너무나 부러웠었네.
박: 나라고 왜 걱정이 없겠나. 지성이가 리그 경기 도중에 부상을 당했잖아. 혹시나 하는 생각은 들었지. 내가 지성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영국으로 전화를 걸어서 맨 처음 물어 본 말이 월드컵에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였어. 항상 불안해. 지금도 마찬가지고. 부상 악몽은 시간이 흘러도 떨어져 나가질 않아.
김: 성종이 친구! 난 지난번에 자네가 순천의 우리 집에 놀러왔을 때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네. 사람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진 거야. 영광이 엄마는 다른 남자가 들어온 줄 알았대. 아니 어떻게 머리가 그 모양이 될 수 있어? 앞머리를 내린 것과 올린 것과는 천지차이가 나더라구.
박: 큭큭… 나도 신기해. 머리가 계속 자라나고 있으니까. 몸무게도 한 5㎏은 빠졌어. 등산을 많이 한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머리가 자라니까 이젠 자신감이 생기더라구. 그래선지는 몰라도 요즘 지성이 엄마가 바짝 긴장해. 자기는 아무리 노력해도 살이 잘 안 빠지는데 내가 점점 젊어진다구 하하.
▲ 박지성선수(왼쪽), 김영광 선수 | ||
박: 머리 얘기는 그만하더라고. 계속 얘기하면 민망하니까. 그건 그렇고 자넨 영광이를 몇 살 쯤 결혼시킬 거야?
김: 글쎄. 아직 영광이가 스물셋밖에 안됐잖아. 결혼을 떠올려 본 적이 없어서. 그래도 서른 전에는 시켜야겠지? 결혼하기 전에 생활의 기반도 마련해 줘야 하고.
박: 난 지성이 결혼이 가장 걱정이야. 정말 좋은 배필을 만나야 하는데 그 녀석이 제 짝을 잘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지성이가 제 엄마한테 자긴 서른 즈음에 중매로 결혼하겠다고 말했대. 그래서 집사람이 연애는 해보고 결혼해야 후회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는데 두고봐야지.
김: 그래도 지성이는 사춘기의 대부분을 외국생활을 하면서 보냈잖아. 주위의 유혹도 그만큼 적었고. 영광인 좀 달라 여기저기서 소문날 만한 일을 만들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어울리게도 되고. 한동안 걱정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어. 어차피 때가 되면 깨닫는 법. 아직 어리니까 그 나이에 즐길 수 있는 걸 즐겨보고 축구할 때는 축구에만 전념할 거라는 사실을.
박: 영광이 뒷바라지하면서, 축구 경기 다 보러 다니면서 자동차 영업을 하는 자넬 보면 신기해. 체력도 대단하구.
김: 하루는 영광이가 자동차 파는 거 그만두고 자기만 뒷바라지하면 안 되겠냐고 묻더라구. 난 단호하게 말했어. 누가 네 아버지 직업이 뭐냐고 묻는다면 자동차 영업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라구. 자동차 영업은 휴대폰 한 대만 있음 되거든. 게임 보러 다니면서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일하면서 영광이 돈을 좀 까먹었잖아. 지금은 그 돈을 거의 채워 넣었거든. 영광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고맙기도 해.
박: 이게 바로 자네의 장점이야. 솔직하다는 거 말야. 우리 이번에 독일 가서 열심히 응원해 보자구. 태극전사 23명이 모두 잘 뛰어줘야 팀도 살고 나라도 살고 지성이도, 영광이도 사는 거니까.
김: 그렇지. 우리가 ‘붉은악마’가 되는 거지. 어디 한 번 목이 터져라 외쳐 보자구. ‘대~한민국!’하고 말이야 하하.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