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금실 전 장관이 지방선거 패배를 인정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5·31 참패 후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열린우리당 내 각 계파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밀명’이다. 강 전 장관이 비록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패했지만 높은 대중적 인기와 정치인으로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기존 대권주자 진영뿐 아니라 친노직계, 중도파, 초·재선 소장파 그룹 등 제 계파가 ‘강금실 영입’을 위한 물밑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선거 참패 이후 “정동영(DY)·김근태(GT) 카드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여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탈계파 및 초·재선 그룹을 중심으로 ‘강금실 역할론’이 급부상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는 한나라당 내 유력한 대권주자로 입지를 구축한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설 대항마 내지는 여권의 새로운 간판 스타로서 강 전 장관이 향후 대선정국에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여권 일각에서는 ‘대권주자 강금실 밀기’ 플랜이 가동되고 있다는 때이른 분석이 제기되고 있을 정도다.
강 전 장관은 두 차례 재·보선 출마 권유 때까지 지켰던 ‘정치 불참’ 소신을 접고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장고’ 끝에 결심했다. ‘역할론’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강 전 장관은 이때 이미 ‘정치인 강금실’이란 나름의 청사진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꿈꾸는 정치를 펼치기 위해 스스로 출마를 결심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로 강 전 장관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 패배가 예고된 선거였지만 시종 웃음을 잃지 않고 즐겁게 선거운동을 했다. 말 그대로 ‘강금실다운’ 선거를 치른 것이다. 특히 강 전 장관이 선거 막판 ‘72시간 마라톤 유세’를 통해 보여준 강단과 대중 흡인력은 주변 여당 의원 등 ‘선거전문가’들까지 놀라게 했다는 후문. 한 의원은 “선거 승패를 떠나 마지막 명동 유세장에서 희망을 봤다”고까지 말했을 정도였다.
강 전 장관이 선거 후 보여준 ‘뒷모습’도 여느 정치인과는 달랐다. 그는 선거 후 비록 패했지만 더 많은 교훈과 경험을 얻었다며 자신이 이번 선거를 통해 새로 태어났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또한 강 전 장관은 선거 직후 “강금실은 늘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시내 곳곳에 내걸었다. “정치활동을 계속하겠다”는 강 전 장관의 속내를 대변하는 문구로 풀이된다.
선거 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강 전 장관의 선호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점도 그의 정치 행보를 부추기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13일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중 ‘차기 대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누가 유력하다고 생각하느냐’는 항목에서 강 전 장관은 8.9%로 고건 전 총리(40.2%)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DY와 GT는 각각 7.9%와 5.0%에 그쳤다.
<문화일보>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최근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도 눈여겨볼 만하다. 여당의 차기 대선후보를 묻는 항목에서 DY와 고 전 총리가 12.0%으로 공동 1위에 올랐고 이어 GT(10.7%), 강 전 장관(6.7%) 순으로 나타났다. 일반인들은 여당 대권후보로 DY나 GT보다 강 전 장관을 더 떠올리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제3후보’로 강 전 장관을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강 전 장관은 지난 13일 시내 한 식당에서 선거 때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뒤풀이 만찬을 가졌다. 선거 패배 뒤 2주 만에 가진 첫 모임이었다. 강 전 장관은 이 자리에서 7월 국토순례를 떠나고 선거 경험을 책으로 출간할 계획 등을 피력한 것으로 한 참석자는 전했다.
이날 만찬에는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유인태 이미경 이계안 의원을 비롯해 선대본부장을 맡았던 김영춘 의원 등 10명의 의원이 참석했는데 시종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한 초선의원은 “모임 성격상 자칫 분위기가 침체될 것을 우려했지만 강 전 장관이 특유의 웃음과 넉살로 분위기를 주도했다”며 “정치활동 재개 여부에 대해 확답을 주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날 참석자들이 구체적인 모임 계획은 잡지 않았지만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강 전 장관이 정치인으로 거듭나도록 도움을 주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상당수 초·재선 소장파 의원들도 ‘강금실 역할론’에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선거 참패 이후 “DY·GT론 안 된다”는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탈계파 모임의 활성화와 더불어 ‘제3후보론’이 재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초선의원 19명이 참여한 가칭 ‘처음처럼’은 13일 1차 준비위원회 모임을 갖고 “당 정체성 및 정책이슈 갈등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당 중심을 세우기 위한 결속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각오를 밝혔고 15일에는 10여 명의 초선의원들이 국회에서 토론회를 갖고 청와대에 쓴소리를 쏟아내기도 했다.
이들 초선의원들은 기존 계파 모임과의 차별화를 위해 별도의 대표의원을 두지 않고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정기조찬 모임과 정책토론회 등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참여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제3후보론’에 대해 대체로 공감대를 지닌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강 전 장관 선거 캠프에서 활동했던 몇몇 의원들은 ‘대권주자 강금실’ 플랜을 지금부터 치밀하게 전개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강(금실)’ 그룹으로 불릴 만한 이 의원들은 계파를 떠나 느슨한 형태의 연구모임을 만들어 강 전 장관 지원 세력을 최대한 규합한다는 계획이다.
강 전 장관의 한 측근 의원은 “캠프에서 활동했던 의원들뿐 아니라 많은 초·재선 소장파 의원들이 강 전 장관의 상품성과 진정성에 공감하고 있다”며 “강 전 장관이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재개할 경우 이른바 ‘친강 그룹’은 30~40명에 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강금실 캠프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오영식 의원은 “강 전 장관은 대권주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평가받을 수 있는 분 중 한 분이지만 아직은 대권주자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말을 아끼기도 했다.
15일 초선의원 토론회에 참석했던 신학용 의원은 “선거 참패 후 ‘제3후보론’이 재부상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그 대상에는 고건 전 총리, 강금실·진대제 전 장관, 박원순 씨 등 여러 유력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특정 인사를 지원하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신 의원은 “결국 제3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의 자질과 역량, 그리고 대중적 인기가 탈계파 초·재선 의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중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