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먼 곳에 처박고 마케팅은 생각도 안해
한국의 지형으로 쉽게 표현해 보자. 워커힐 호텔쯤이 선수단 훈련장이라면 선수 숙소는 홍은동 쪽에 있고 기자단 숙소는 분당 쪽에 위치해 있다고 상상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같은 G조의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 프랑스 스위스 토고 등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톡톡히 홍보 효과를 거뒀다. 선수들이 묵고 있는 시 전체가 찾아온 대표팀을 위해 성심성의껏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시청에다 프레스룸을 별도로 마련해 기자들에게 편의 시설을 제공했다.
선수들 인터뷰도 기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훈련장 외에서는 모두가 기자들이 있는 프레스 센터로 찾아온다. 프랑스 대표팀의 경우엔 앙리, 지단, 말루다, 비에라 등도 15분가량의 차를 타고 숙소에서 프레스센터까지 나와서 한두 시간의 인터뷰를 하고 돌아간다. 심지어 토고가 베이스캠프를 차린 방엔은 시장과 시민들은 물론 스폰서 업체까지 나서서 대표팀을 지원하고 기자들을 도와줬다. 마치 방엔이 토고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시 전체가 토고 국기로 출렁거렸다.
그렇다면 한국 선수단이 묵고 있는 베르기시 글라드바흐와 훈련장이 있는 레버쿠젠은 어떠했을까. 선수단 호텔 주변에선 태극기를 볼 수 있었지만 레버쿠젠은 태극기가 아예 보이질 않았다. 프레스룸은 설치되지도 않았고 기자들은 훈련이 끝난 뒤 아드보카트 감독이 지정한 선수와 5분가량의 짧은 인터뷰만 마친 채 곧장 버스에 올라탔다. 경기 이틀 전날 단체 인터뷰가 있기 전에는 선수들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기조차 힘들었다.
기자들이 고생하는 건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축구를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서 놓쳐 버린 대한축구협회의 마케팅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넘어 개탄스러울 정도다. 더욱이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선수들을 위해 통역 서비스라도 해줘야 했던 게 아닌가. 외신 기자들이 한국 훈련장을 찾을 때마다 박지성 설기현 이영표 외에 인터뷰를 못했던 건 우리 선수들이 영어로 말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신 기자들이 한국 기자들에게 귀동냥하면서 다른 선수들의 멘트를 따는 건 아주 흔하고 익숙한 풍경이었다.
축구만 16강에 진출하면 뭐하나. 뒷받침해주는 소프트웨어가 386 기종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우리가 간절히 바랐던 16강 진출은 어떤 면에서는 ‘욕심’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걸 깨닫는 데 30여 일이 걸렸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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