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에서 만난 자랑스런 붉은악마들 | ||
아직 월드컵이 끝난 건 아닙니다. 한국이 16강에 탈락했다고 해도 월드컵은 우승팀을 가르기 위해 여전히 치열한 레이스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도통 신이 나지 않습니다. 선수들에게는 기사를 통해 ‘마음을 가볍게 먹고 월드컵을 즐기라’고 폼 나게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정작 전 월드컵을 즐기는 대신 밟고 밟히는 승부의 세계에서 ‘싸움닭’의 묘미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다 지난 일이고 돌이킬 수 없는 부분들이지만 아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토고전의 마지막 프리킥 찬스에서 이천수가 볼을 돌리지 않고 공격적으로 밀어붙였더라면, 프랑스전의 무승부에 감격해 하지 말고 역전골을 향해 몸을 날렸더라면, 스위스전의 주심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만 판정을 내렸다면. 만약 그랬더라면 승점 4점을 내고도 16강에 탈락하는 유일한 팀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스위스전이 끝난 뒤 믹스트 존에서 선수들을 기다리는 동안 기자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누구보다 상심하고 있을 선수들에게 뭔가를 물어본다는 게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우린 서로 프로니까 각자의 일에 충실해야 하지만 진심으로 선수들의 선전을 빌었고 선수들의 투혼에 박수를 보냈던 저로선 선수들 얼굴 보기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 경기장에선 탤런트 서지영과 이영미 기자가 함께했다. | ||
하지만 게임은 이미 끝나 버렸습니다. “판정도 경기의 일부분”이라며 한 차원 높은 시각을 보여준 박지성의 말 속에도 더 이상 심판 판정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건 쓸 데 없는 소모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따지면 프랑스전에서 전반 36분 비에라의 헤딩슛이 골라인을 넘어섰다고 주장하는 프랑스팀 입장도 비슷한 부분이었겠죠. 이미 16강 진출이 확정돼 더 이상의 문제 제기는 하지 않겠지만 말예요.
져도 깔끔하게 졌다면 귀국하는 발걸음이 가벼웠을 겁니다. 이번 독일월드컵을 통해 한국 축구가 이뤄낸 업적이 많기 때문이죠. 그러나 다소 ‘껄쩍지근한’ 결과로 인해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는 부분이 국민들은 물론 선수들의 마음을 무겁게 할 것 같네요.
하지만 월드컵 무대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투혼을 불사른 23명의 태극 전사들에게 마음을 다해 박수를 보냅니다. 세계 축구의 벽이 얼마나 높고 큰지를 실감한 그들이기에 분명 유럽 리그나 K-리그에서 상당히 업그레이드돼 나타날 것입니다.
선수들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독일에서의 값진 경험을 자신의 축구 인생에 큰 디딤돌로 만들라는 겁니다. 이렇게 땀과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나중에 빈손만 남아 있다면 너무 허탈해지지 않겠어요?
공부하는 선수들이 되자구요. 축구도 영어도요. 그래서 4년 뒤에는 어느 팀을 만나도 위축되지 않는 플레이로 세계 강팀들을 상대하는 것은 물론 외신 기자들을 피해 도망다니기보단 영어 몇 마디라도 풀어내며 자신있게 인터뷰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태극전사들이 떠난 독일 땅이 너무 휑해 보일 것 같아요. 그래도 그들과 함께 한 지난 한 달이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이젠 하노버에서 뒤셀도르프로 돌아가 짐을 싸야 합니다.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죠. 대한민국을 목 놓아 외친 국민들의 열기가 이젠 한국의 K-리그로 향했음 하는 바람을 전하며 ‘월드컵 러브레터’를 마칩니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