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요. 에이 설마 제가.”(기자)
“(웃음) 에이, 믿을 수가 있어야지. 핸드폰 이리 줘 봐.”(검사)
최근 검사와 기자들이 ‘녹취’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사진은 스마트폰 녹음기 애플리케이션 이미지(왼쪽)와 서울중앙지검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일요신문DB
검사와의 술자리에 오고간 대화다. 검찰-기자 관계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농담처럼 나온 이야기인데, 최근 서초동에서는 검사가 기자들을 만날 때 장난치는 듯 ‘녹취’를 확인하곤 한다. 서로가 불편한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먼저 지난 2월 말쯤. 한 기자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와의 대화를 몰래 녹취한 뒤 대화 내용을 모두 풀어 제3자에게 공유하면서 발생했다. 수사와 관련된 예민한 대화 내용은 없었지만 이 녹취록은 거꾸로 검찰 측에 흘러 들어갔다. 이 내용을 접한 대검찰청은 그 부장검사에게 “별다른 내용은 없었지만 그대로 대화 내용이 돌아다니니 조심해라”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고, 검사들은 기자들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검찰 최고위 관계자와 각 언론사 법조팀 최고참 기자의 미팅에서 한 기자가 허락을 받지 않고 녹취를 하다가 적발된 것. 앞선 사건으로 예민해져 있던 검찰 관계자가 수상한 휴대전화 움직임이 녹취라는 것을 확인하곤 화를 냈다. 미팅은 곧바로 취소됐고 기자단에서 검찰에 사과하고 오해를 설명하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연달아 녹취 사건이 터지면서 기자들을 향한 검사들의 불신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그래도 신뢰를 가진 기자들에게는 그동안 허물없이 다 얘기를 했는데, 정말 기자들이 다 녹취를 하느냐”고 물었다. 전화를 걸자 “근데 이거 녹음하시는 거 아니죠?”라며 물어오는 검사도 있다.
거의 모든 술자리에서 “녹취하면 안 된다”는 얘기가 농담 반, 진담 반처럼 나오는 상황. 소문이 퍼져 법원 관계자들 역시 “내막이 뭐냐, 정말 사실이냐. 어떻게 허락 받지 않고 녹취를 할 수 있느냐”는 얘기와 함께 “동의를 받지 않은 제3자 녹취는 명백한 불법으로 처벌이 가능하고~”라며 법리를 설명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기자들도 대부분 “허락받지 않은 녹음은 잘못”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억울함을 토로한다. 한두 기자가 녹취를 하다가 적발된 일을 마치 전체인 것처럼 싸잡아서 비판하고 있다는 것. 일부 기자들은 오히려 “자기네들이 말을 계속 바꾸고, 기사가 나가면 아니라고 부인하며 거짓말을 해서 그 증거로 남기려는 것인데 신뢰를 운운한다”며 “정말 신뢰를 보인 취재원이라면 우리도 녹취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서로의 불신은 수사를 하는 검찰이나 수사 진행 상황을 토대로 기사를 쓰는 언론에게 모두 좋지 않다”면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조계 내 취재 관련 녹취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설정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남윤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