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1500m 결승전에서 안현수가 선두를 달리는 모습. 그는 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사상 최초로 전종목 메달 획득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로이터/연합뉴스 | ||
먼저 ‘별들의 탄생 신화’란 타이틀이 무척 부담스럽다. 매스컴에선 현수가 좋은 성적을 낼 때마다 최고의 찬사를 쏟아내지만 아직도 걸어야 할 길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과한 칭찬은 기분이 좋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숙제’로 다가온다.
이 코너의 연재를 맡기로 결심하면서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지난 4월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대표단이 입국하는 과정에서 빙상연맹 측 임원과 내가 충돌을 벌였던 부분이다.
우선 선수 부모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물의를 일으킨 점은 정말 죄송하다. 그러나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감정과 불만들이 폭발했고 상대방도 인격적인 모독을 서슴지 않아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벌어진 일이다.
쇼트트랙은 동계올림픽 종목 중에서 가장 인기있다고 하지만 국내 현실에선 비인기 종목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연맹의 체계나 선수 관리, 지원과 대우 부분 등이 여느 프로 스포츠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다. 선수 부모들이 처음엔 자식을 위해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의 심정이 돼 참고 지켜보기만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고 변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아예 운동을 포기하거나 국적을 바꾸거나 그것도 아니면 나처럼 문제를 지적하면서 투쟁을 불사하는 방법밖에 없다.
정말 솔직히 말해서 현수만을 위한다면 굳이 이런 험한 꼴을 당하며 나서지 않아도 된다. 현수가 국제 대회 나가서 열심히 메달을 따오고 있는데 뭐하러 부모가 나서겠는가.
그러나 현수나 내가 말하지 않으면 나머지 선수들은 더더욱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성적이 뒷받침되면 그나마 결과를 방패막이 삼아 연맹에 이런저런 요구를 내세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입도 뻥긋하기 힘든 게 이곳의 현실이다.
굳이 이 지면을 통해 내 변명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답답한 부분은 비인기 종목이라고 해도, 또 프로 스포츠가 아니라고 해도, 정해진 룰과 기본을 무시하는 단체라면 비난과 한탄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현수와 내가 함께 걸어왔던 지난 이야기들을 풀어보겠다.
현수가 스케이트를 처음 신을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모습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단순히 취미 생활이었고 조금 타다 그만둘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현수는 스케이트를 벗으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선수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순간 아버지로서 고민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 아들의 뜻을 꺾기가 힘들었다. 그 후론 나마저 생업을 등한시하고 현수와 함께 스케이트장을 찾아다니면서 ‘동고동락’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현수의 하루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됐다. 등교 전까지 같이 운동을 하다가 현수는 학교로, 난 회사로 출근해서 각자의 일을 본 다음 ‘헤쳐 모이는’ 시간이 저녁 6시. 그 후론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저녁 운동을 했다. 운동-학교-운동의 반복된 생활이 10년 넘게 지속되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쇼트트랙이 개인 운동이다보니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내가 없으면 현수는 운동을 하러 다닐 수 없었다. 특히 빙상이라는 특수 환경 때문에 ‘얼음판 찾아 삼만리’라고 할 만큼 제한된 운동 여건이 번번이 발목을 잡기도 했다.
현수를 뒷바라지하면서 경제적 가정적인 문제에 봉착해 수없이 캄캄한 밤길을 헤매고 다녔지만 현수나 나나 단 한 번도 운동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쇼트트랙에 인생을 건 만큼 우리 부자는 특유의 ‘무대뽀’ 정신으로 많은 장애물들을 넘어서 지금에 이르렀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