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으면 조용히 지나갈 법한 일이었지만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으로 인해 큰 소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아버지와 딸의 대화를 우연히 들은 통신사의 초보 골프 기자가 아무 생각 없이 가십기사를 썼고 이것이 바로 인터넷에 올랐다. 이를 본 한 네티즌이 골프규칙 8조 1항 ‘어드바이스 조항’을 어겼다고 대회 본부에 제보했고 장하나가 경기를 마치기도 전에 벌타가 결정됐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유명한 ‘미셸 위(위성미)’의 프로 데뷔전 실격 사건이 2005년 10월이니 한국은 IT강국답게 ‘뉴미디어를 통한 골프 대회 감시’에 있어서도 한 발 앞서가고 있는 셈이다.
지난 6일 또 다시 ‘골프 대회와 팬의 쌍방향 시대’를 알리는 큰 사건이 벌어졌다. 올시즌 국내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박희영이 희생양(?)이어서 더욱 화제가 됐다. 디펜딩챔피언으로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PAVV 인비테이셔널 골프 대회 1라운드를 치르던 박희영은 18번홀(파4)에서 세컨드 샷을 그린 앞 해저드 지역에 떨어뜨렸다. 처음엔 물에 빠진 줄 알았는데 풀을 헤치며 찾아보니 공이 해저드 지역이긴 하지만 풀 위에 놓여 있었다.
그렇게 경기를 마쳤다. 스코어도 3언더파로 우승을 노릴 만한 선두권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인 7일 문제가 터졌다. 이날 새벽 TV 녹화 중계를 본 시청자가 ‘해저드 내의 루스 임페디먼트(움직일 수 있는 장애물)을 건드리면 벌타를 받는다’는 골프 규칙 13조 4항 C조를 지적해 왔다. 경기위원들은 녹화 테이프로 이를 확인했고, 두 차례나 풀을 헤친 박희영에게 2벌타씩 4벌타를 부과했다. 하지만 이미 1라운드는 끝났고 박희영은 스코어 카드를 제출했다. 결국 ‘스코어 오기’로 우승 후보 박희영은 실격됐다.
물론 박희영이 실수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자연과 싸우는 골프에서 플레이어가 처할 수 있는 상황은 너무도 다양하다. 아무리 룰을 달달 외워도 룰의 구체적 적용에서 실수할 여지가 있다. 그래서 대회마다 경기위원이 있는 것이다.
마커 노릇을 한 박희영의 동반자를 비롯해 경기를 지켜본 대회 관계자, 중계를 본 방송 및 취재진 등이 모두 작은 실수를 한 셈이다. 첫 번째 풀을 건드렸을 때 지적했어야 했고 또 스코어 카드를 내기 전 누군가는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갔어야 했다. 그렇다면 실격되지 않고 벌타만 안은 채 계속 플레이할 수 있었다. 평범한 시청자가 뒤늦게 녹화 중계를 보고 제보해서 뒤늦게 실격 처리된 것은 따지고 보면 너무 우스운 일이다. 갑자기 우승 후보가 사라졌으니 팬들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미LPGA를 2년간 취재하고 온 선배 기자에 따르면 미국 프로대회에서 모든 선수의 플레이는 카메라에 녹화된다고 한다. TV로 중계되지 않는 장면도 녹화로 기록되는 것이다. 이를 모르고 한국에서처럼 갤러리나 경기위원 그리고 동반자가 지켜보지 않았다고 판단해서 부정플레이를 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실제로 한 한국 선수는 퍼팅 전 볼을 건드리고도 그냥 넘어가려다가 나중에 녹화 테이프에 걸려 실격을 당하기도 했다.
IT강국, 그리고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2개의 골프 전문 채널’을 보유한 한국도 미LPGA를 배워야 한다. 그래야 박희영과 같은 ‘불필요한 실격’이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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