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병역 기피 의혹을 받고 있는 백차승. 응원과 비난 속에서 공을 던져야 하는 그의 처지가 안타깝다. 로이터/뉴시스 | ||
지난 <일요신문> 747호에 소개된 메이저리거 백차승 독점 인터뷰 기사를 통해 백차승이 국적을 변경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몇몇 매체에서 백차승을 ‘야구판의 유승준’으로 몰고 가며 병역 기피를 위해 국적을 변경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보다 애국심이 투철한 우리 국민성에 비춰볼 때 백차승의 국적 변경은 분명 민감한 사안일 수 있다. 그러나 백차승이 왜 국적을 변경하면서까지 야구를 할 수밖에 없는지 그 배경을 정확히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 백차승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 본다.
▶▶등판 거부 후 캐치볼?
백차승은 1998년 9월 12일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대만과의 준결승전에서 5회까지 던지다가 팔꿈치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감독의 허락 아래 더 이상 등판을 하지 않았다(<일요신문> 747호 참조). 그러나 백차승은 그 일로 인해 대한야구협회로부터 ‘무기한 자격 정지’를 받게 되었다.
이에 대해 한 스포츠신문에서는 당시 대표팀 총무로 참가, 백차승의 징계를 건의했던 대한야구협회 김희련 전무이사의 말을 통해 ‘백차승이 태업을 했다’고 밝혔다. 즉 백차승이 자진 강판 후 다음 날 캐치볼을 하는 걸 봤고 이것은 당시 시애틀 입단이 확정적이었던 백차승이 팔을 아끼려고 태업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어 징계를 건의했다는 내용의 기사다.
그러나 백차승은 대만전 다음날 캐치볼을 한 적이 없다. 백차승은 “팔이 아픈 선수가 어떻게 캐치볼을 할 수 있겠나. 다음날 다른 선수가 스트레칭하고 있는 걸 도와주려 했을 뿐 결코 공을 만진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은 당시 백차승과 같이 대표팀에서 뛰었던 송승준(26·캔자스시티 산하 로열스 더블A 위치타 랭글러스)도 의견을 같이했다. 송승준은 7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백)차승이가 대만전 이후 캐치볼을 한 적이 없었다. 그건 당시 같이 뛰었던 김광삼이나 우용민 등도 증언해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차승이가 (우)용민이 스트레칭하는 걸 도와주려 그라운드에 나갔을 뿐 공을 만진 적이 없었는데 왜 그런 오해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밝혔다(65면 송승준 인터뷰 참조).
▶▶대회 전 시애틀과 계약?
백차승이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이후 시애틀과의 입단 계약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야구계에선 백차승이 이미 시애틀과 계약을 맺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항간에는 이미 계약된 시애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국제대회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이 부분은 이후 ‘백차승 태업 논란’의 단초를 제공했다.
▲ 연합뉴스 | ||
▶▶왜 백차승만 국적 변경?
대한야구협회로부터 해외 진출 후 ‘무기한 자격 정지’를 받은 선수는 김병현 최희섭 송승준 등 여러 명이다. 그러나 백차승의 경우와는 다르다. 위의 선수들은 해외 진출 이후 자격 정지를 받았지만 백차승은 해외 진출 이전 국제대회에서 태업했다는 이유로 무기한 자격 정지를 받았다. 이 부분이 향후 백차승의 비자 발급 문제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당시 미국대사관은 시애틀과 입단 계약을 맺고 일시 귀국 후 비자를 받으려는 백차승에게 ‘비자를 발급해 줄 수 없다’고 계속 거절 의사를 밝혔다. 6개월 동안 세 차례나 비자 거부를 당하다가 급기야 시애틀 측에서 미국 변호사와 한국의 변호사를 선임해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미국대사관 측에선 ‘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비자를 발급해 줄 수 없다’는 편지를 시애틀 구단으로 보냈다. 병무청으로부터 신체검사를 받지 않은 백차승이 군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자를 발급해 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백차승 측에선 이 부분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병역 미필자들인 다른 선수들은 제대로 비자를 발급받고 미국 야구 무대에서 활동하는데 자신한테만 왜 군 문제를 거론하며 비자를 내줄 수 없다고 하는지 도통 납득이 되지 않은 것이다(송승준도 신검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비자를 발급받았다).
결국 시애틀 매리너스의 끈질기고 집요한 대응으로 어렵게 조건부 비자를 받고 출국하게 됐지만 백차승은 향후 더 커다란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비자 재발급을 위해 귀국할 경우 다시 거절당하면 영영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 것. 국내에서 무기한 자격 정지 징계를 당한 그로서는 이렇게 되면 야구선수로서 사망선고를 받는 것과 다름없었다. 숱한 방황과 갈등 끝에 백차승은 병무청과 귀국하기로 약속한 날짜를 어겼고 대신 미국 출국 때 병무청에 보증을 선 아버지와 지인이 벌금을 물게 되는데 그 액수가 무려 1억 원에 이른다. 이후 무비자 신세가 된 백차승은 임시영주권을 발급받아 생활하다가 지난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다.
야구계에선 여전히 백차승이 미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 과정과 방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백차승은 “야구를 위해, 야구를 하고 싶어서”라고만 대답할 뿐 자세한 내용을 말하지 않고 있다.
▶▶‘제2의 유승준’은 그만
백차승은 요즘 알지도 못하는 한 사람에게 괜히 미안한 기분이다. 바로 가수 유승준이다. 국적 변경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신의 기사가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이름이 바로 유승준이었기 때문이다. 야구에만 전념해도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기 힘든 마당에 자신을 둘러싼 환경으로 인해 한국에서 ‘문제아’가 됐다는 현실도 백차승에겐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다. 가끔은 왜 이렇게 자신의 인생이 꼬이고 꼬이는지 원망스럽기도 하다는 백차승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이 모든 게 야구를 계속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국적 변경이라는 선택의 순간에서 가장 고민했을 때 떠올린 생각은 야구였다. 날 배신자라고 비난해도 달게 받겠다. 국적은 바뀌었지만 난 영원히 한국 사람이고 내 야구의 마지막은 한국에 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우뚝 서 태극기를 꽂는 일이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