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기현이 지난 17일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을 터트린 뒤 한국 취재진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부상과 슬럼프로 괴로운 시간이 있었다. 팬들의 비난에 마음 아팠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설기현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드디어 프리미어리그라는 최고의 무대까지 올라왔 | ||
그러나 한 가지 목표를 두고 거북이처럼 걸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옛 이야기는 틀리지 않았다. 강원도 강릉 경포대 앞 모래사장을 뛰던 까까머리 고등학생 설기현이 10년 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주름잡을 걸 과연 생각이나 했을까. 그러나 설기현은 해냈다. 설기현의 성공을 얘기할 때는 철저한 현지화와 노력, 땀방울 등의 단어가 겹쳐진다.
▶▶영어의 벽을 넘다
설기현은 현지 기자들과 영어로 인터뷰를 유창하게 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영어를 못 한다”며 손사래를 친다. 한 달 이상 옆에서 지켜본 결과 이 말은 거짓말이다.
설기현이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을 터트린 지난 17일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앞. 설기현은 자신을 기다리던 한국 취재진과의 간단한 인터뷰가 끝나자 옆에서 기다리던 영국 기자들을 만났다. 무슨 대화가 오가나 유심히 들어보니 한국 기자들의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신 영어로 진행된다는 게 낯설 뿐이었다. 하지만 설기현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영국 기자들은 설기현의 영어에 대해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표현을 잘 구사한다. 또 외국 선수이긴 하지만 정중하게 의사를 표현하려는 태도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확실한 영어 구사 능력과 더불어 인간미도 물씬 풍기니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설기현(왼쪽)은 영국 현지 기자들과도 유창하게 인터뷰를 한다. | ||
그러나 정작 영국에 온 뒤부터는 혼자서 영어 공부에 집중했다. 매일 훈련장에서 만나는 동료들이 최고의 선생님이란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다. 훈련장에 나가 동료들이 쓰는 표현을 외워뒀다가 그대로 말하면서 살아있는 영어를 몸으로 배웠다.
▶▶인생을 배우다
설기현은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을 챔피언십 울버 햄프턴에서 경험했다. 지난 2004년 벨기에 최고 명문 구단인 안더레흐트에서 영국 땅을 밟을 때는 솔직히 1년이면 프리미어리그로 올라갈 거라 생각했다. 프리미어리그라는 문 앞에서 손잡이를 잡고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동시에 채찍질했다.
그러나 벨기에와는 차원이 달랐다. 마치 돌에 부딪치는 듯한 강한 몸싸움의 영국 축구에 적응하지 못해 주춤했다. 하지만 특유의 성실함에다 피나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점차 극복해 나갔다.
설기현을 잉글랜드로 데려온 데이브 존스 감독의 신임도 두터웠다. 그러나 자리를 잡을 만하니 시련이 찾아왔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든든한 후원자였던 존스 감독이 경질된 것. 글렌 호들 감독이 오기 전 한 달 동안 감독대행을 맡은 스튜어트 그레이 코치는 설기현을 교체 멤버로 밀어냈다. 신임 글렌 호들 감독이 부임하고 다시 주전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여지없이 어둠의 터널이 기다리고 있었다. 글렌 호들 감독은 2005년 설기현이 피부병과 부진에 빠지자 벤치로 내몰았다.
허리 부상을 입었던 2001년 벨기에 시절이라면 아무 것도 몰라서 넘어간다고 하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마음이 급해졌다. 일이 안되려고 하는지 아드보카트 대표팀 감독도 설기현을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소속팀에서 못 뛰니 대표팀서도 별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섭섭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지금도 아드보카트 감독이 왜 그렇게 믿음을 주지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하지만 챔피언십 챔피언인 레딩의 스티브 코펠 감독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레딩과 인연이 맺어지자 자신감이 새로 솟구쳤다. 혼자라고 느낄 때 그래도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진흙 속의 진주였던 설기현은 레딩 돌풍의 주인공으로 우뚝 솟아올랐다. 그의 성공 뒤에는 인생에는 단맛과 쓴맛 사이에 아무 맛도 없는 시간이 있다는 걸 아는 여유가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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