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A 이종범이 시즌 내내 슬럼프에 허덕이다 최근 컨디션을 회복하고 있다. 지난 5월 두산과의 경기에서 홈으로 파고들어 득점에 성공하는 이종범. 연합뉴스 | ||
그는 올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대표팀 주장을 맡아 팀을 4강 신화로 이끌었다. 그러나 정작 시즌이 시작되자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다. 다행스럽게도 이종범은 정규시즌 막판 들어 기운을 차리고 있다. 지난 8월 말 한 달여 만에 1군에 복귀한 뒤 서서히 부활을 알리기 시작했다.
시즌 막판, 두산과의 ‘4위 전쟁’을 벌이고 있는 KIA로선 이종범의 컨디션 회복이 천군만마임에 틀림없다. 지난해 사상 첫 정규시즌 최하위의 수모를 겪었던 KIA. 그러나 ‘바람’이 다시 불고 있으니 KIA의 올가을에 청신호가 켜졌다.
▶▶WBC의 보이지 않는 손
지난 3월. 4강 신화를 일군 WBC 대표팀에서 이종범은 단순한 주장 이상의 역할을 했다. 박찬호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김선우 등 해외파와 국내 최고 선수들이 한데 어울려 이뤄진 명실 공히 사상 최강의 대표팀이었다.
그러나 당시 대표팀 내에는 미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선수 기용을 비롯한 모든 팀운영이 해외파 위주로 진행된다는 불만이었다. 국내파 선수들은 “해외파만 부각되는 분위기인데 우리야 찍소리 않고 죽어지내주면 되는 것 아니냐”며 은근히 볼멘 소리를 했다. 훈련 스타일의 차이, 게다가 선후배 관계에 대한 사고방식에 약간의 골이 있었기 때문에 불협화음을 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종범이 선수들을 아우르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했다. 주로 후배들로 구성된 해외파 선수들에게 친근감 있게 다가서고 또한 국내파 선수들을 다독거리며 이른바 ‘팀 케미스트리(융화)’를 이끌어내는데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 결과 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열린 WBC에서 4강의 기적을 낳을 수 있었다.
▶▶야구판의 엔터테이너
한때 연예인들이 “~했다규~”, “~아니냐규~” 하는 말투를 유행시킨 적이 있다. 본래 이 말투는 이종범이 쓰던 것이었다. 이종범은 초년병 시절부터 스타플레이어로 떠오른 덕분인지 연예인들과 폭넓은 교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때때로 비시즌 때 연예인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데 이때 이종범이 장난스럽게 한 말투를 개그맨들이 흉내내다가 유행어로 미는 상황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의 이종범은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그는 야구 못지않게 즐겁게 노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다. 몇 해 전, 겨울에 이종범을 비롯한 선수 몇 명과 함께 노래방에 간 적이 있다. 당시 선곡을 한 뒤 전주가 흐르는 동안에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뛰쳐나오며 노래를 부르는 이종범을 보면서 그야말로 깔깔 웃었던 기억이 있다. 야구장에서도 최선을 다 하고, 놀 땐 그 상황에 맞게 좌중을 웃길 수 있는 여유가 바로 이종범의 장점이다.
▲ 지난 3월 WBC 때 이종범이 후배들을 격려하고 있다. | ||
다른 팀 선수들과의 유대 관계도 폭넓다. 야구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고 집, 혹은 숙소로 돌아가면 12시 조금 넘어 텔레비전을 통해 타구장 경기 하이라이트를 즐겨 본다. 친한 후배 가운데 오랜만에 홈런을 치거나 승리투수가 된 선수가 있다면 반드시 이종범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돼 있다. “어~이, 간만에 한 건 했던데” 물론 이종범이 활약한 날에는 그의 휴대폰에도 불이 난다.
▶▶불화는 없다
서두에 언급했지만 올 시즌 중반에 이종범이 좀처럼 1군 엔트리에 오르지 못하자 ‘서정환 감독과 관계가 좋지 못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물론 근거 없는 얘기였다. 서정환 감독은 당시 2군에 있는 이종범을 언급하면서 “선수와 감독이 불화가 있을 게 뭐가 있나. 종범이가 스스로 2군행을 자청했는데 이상한 소문이 도니 난감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종범은 올 시즌 성적 부진에 따른 스트레스에 개인적인 사정이 겹치면서 야구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고 한다. 이종범 정도의 베테랑 스타플레이어가 부진하면 팀 분위기에 적잖은 영향이 뒤따른다. 본인이 인상을 찌푸리게 됨은 물론이고 후배들도 눈치를 보기 때문에 클럽하우스 분위기가 딱딱해질 수 있다.
이종범 스스로 2군행을 자청한 데에는 이 같은 이유도 있었다. 이종범이 1군에 복귀한 뒤 예전 실력을 회복해가자 KIA 팀 분위기가 밝아진 것은 당연하다. 이종범 못지않게 속앓이를 했던 서정환 감독도 고참의 투혼이 반갑기만 하다.
시즌 중반까지 부진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WBC 후유증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WBC에선 맹타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 시기는 본래 실전보다는 체력 훈련을 통해 한 시즌을 이끌어갈 밑바탕을 쌓아야 할 시점이다. 가뜩이나 3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나이인 이종범으로선 체력 훈련이 부족한 상황에서 실전 경기만으로 2~3월을 지내다보니 정작 정규시즌 들어선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찬 바람이 솔솔 불면서 원기를 되찾고 있는 이종범이다. 프로야구계의 몇 안 되는 ‘전국구 스타’로서 이종범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현역으로 맹활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직 만 서른여섯에 ‘불과’하지 않은가.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