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미어리그 입성 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설기현에 대해 어머니 김영자 씨는 초심을 잃지 말라는 충고과 함께 아들에 대한 굳은 믿음을 보냈다. | ||
요즘 우리 아들 덕분에 이런 저런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된다. 원래 나서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한사코 거절을 해도 계속 부탁해오면 마음이 약해 물어보는 대로 말을 하고 만다. 그런데 기현이는 엄마가 매스컴에 등장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기는 인터뷰해도 가족들은 가급적이면 조용히 사는 걸 원한다.
얼마 전 재미난 일이 있었다. 기현이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첫 골을 넣자 어떤 기자가 전화를 걸어선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하지만 난 그 경기를 보질 못했다. 집에 케이블 TV가 설치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케이블 TV가 없어 경기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더니 그걸 기사화한 것이다. 그 기사가 나간 후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 외국에서 뛰고 있는 아들이 있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케이블 TV를 설치하지 않았냐는 책망이었다. 기사 때문인지 며칠 후 큰 아들이 케이블 TV를 설치해줬지만 괜히 미안해졌다. 그동안 내가 필요 없다고 해서 설치를 안 한 것인데 마치 아들들이 무심해서 그런 것처럼 보인 것이다. 우리 집에 케이블 TV가 설치돼 있지 않다는 게 어떻게 기삿 거리가 될 수 있는지 지금도 의아하고 재미있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 잠시 귀국한 기현이가 대표팀 소집일 전에 잠시 강릉에 왔다. 이전 영국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단단해진 모습이었다.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프리미어리그 입성 초반에 너무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 같아서다. 기현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자만하지 말라고, 초심을 잃지 말라는 충고를 했는데 나보다 기현이가 더 그런 부분에선 심지가 굳고 깊다.
▲ 설기현의 부인 윤미 씨. | ||
가끔은 기자들이 며느리인 인웅이 에미(윤미 씨)에 대해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우리 아들이 힘들 때 먼 타지에서 같이 고생을 했고 고통스런 시간들을 큰 불평 없이 보낸 착한 며느리라고 대답한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며느리같이 참하고 착한 사람이 드물다. 기현이가 다른 건 몰라도 처복이 있는 것 같아 흐뭇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딸처럼 엄마처럼 생각한다고 해도 앞에 ‘시’자가 붙으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며느리도 그렇지만 나 또한 아주 가끔 서운해질 때가 있다. 특별히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결혼한 아들을 둔 엄마의 일반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난 성격상 아들 집에 가도 가만히 있질 못한다. 내가 나서서 일을 해야 속이 편하다. 영국에 갔을 때도 앉아서 밥상 받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며느리를 도와줘야 한다고 결심한 탓이다.
잘 모르겠다. 난 한다고 하지만 며느리가 받아들이는 부분과 또 며느리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내가 받아들이는 부분이 같을지 다를지…. 그래도 우리 고부 관계는 별다른 이상 없이 잘 흘러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몇 회 연재를 하면서 하도 없이 살고 힘들게 지냈던 일만 얘기했더니 다들 한 마디씩 한다. 내용이 너무 우중충하다고.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그런 얘기를 안 꺼냈다. 에구, 허리가 너무 아파서 옛날 얘기는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