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
▶▶솔직함과 카리스마
지난 9월 선동열 감독은 잠실구장 원정경기 때 “나, 뱀은 거의 안 먹었어”라는 얘기를 꺼내 취재진의 웃음을 자아냈다. ‘한국 뱀의 절반을 먹었다’는 풍문이 있다는 얘기에 미소를 지으면서 “본래 뱀탕은 잘 먹지 않는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신 청소년 시절부터 장어는 엄청나게 먹었다는 일화를 밝혔다. 또 붕어즙과 같은 강장식도 1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때론 솔직함 때문에 팬들로부터 공격당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스포츠조선> 지면을 통해 “오승환은 나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는 선 감독의 인터뷰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삼성 마무리투수 오승환이 올시즌 47세이브로 아시아 한 시즌 신기록을 세웠지만 전성기 시절의 ‘투수 선동열’에 비하면 변화구 구사 능력과 연투 능력에서 처진다는 솔직한 평가를 선 감독이 한 것이다.
기사가 나간 후 팬들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최고 투수였던 선동열 감독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다”는 인터넷 댓글이 많았는가 하면 일부에선 “제자를 칭찬하고 키워줘야 할 감독이 할 말이 아니다”라는 평가도 있었다. 당시 오승환 본인은 “어디 감히 감독님과 나를 비교하겠는가. 앞으로 감독님께 배워야할 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선 감독의 솔직함 속에는 한국 최고 투수로 군림했던 데 대한 자부심도 섞여있다. 현역 시절 밤새 술을 마시고도 다음날 완투승을 밥먹듯이 하고, 하루는 3이닝 마무리, 이튿날에는 선발투수로 나가 승리를 따냈던 기억도 있다. 덕분에 좋은 투수가 탄생해도 선 감독의 눈에는 약점이 먼저 들어오는 게 당연하다.
▶▶손꼽히는 두주불사
굳이 선동열 감독과 함께 허재 감독을 언급하는 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술 대결 에피소드 때문이다. 몇 년 전 선 감독과 허 감독이 사석에서 만나 술을 마신 일이 있다고 한다. 초저녁 소주를 마시는 것으로 시작된 술자리는 장소를 바꿔가며 밤 12시 넘어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에 맥주와 양주, 폭탄주 등 엄청난 술을 마신 것은 물론이다.
선동열 감독의 주량은 현역 시절부터 천하가 알아줄 정도였다. 하지만 선 감독은 “당시 허 재 감독과 먹을 때에는 마지막 차수에 가서는 ‘이거 이대로 마시다가는 죽을 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들었다고 한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잠시 자리를 비운 허 재 감독이 돌아오는 대로 술자리를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단다.
▲ 선동열의 해태 시절(왼쪽)과 일본 주니치 시절의 활약 모습. | ||
이처럼 두주불사 스타일이었던 선동열 감독도 지난 4월 정규시즌 개막 이후 4개월 정도 술을 삼가한 시기가 있었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갑작스레 가슴 쪽에 통증을 느낀 선 감독은 귀국한 뒤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간이 상당히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정규시즌 개막 직전에 선 감독은 “당분간 담배와 술을 모두 끊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선 감독은 금연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대신 몸이 회복된 9월부터는 가끔씩 술자리를 갖고 있다.
▶▶해외파의 선구자
해외파의 시초는 물론 박찬호(샌디에이고)다. 그러나 국내파 프로선수로서 해외 진출에 성공한 첫 케이스는 바로 선동열 감독이다. 96년 주니치 드래곤즈와 계약하면서 일본 리그에 첫 발을 내디뎠다. 물론 첫 해에는 실패했다. 당시를 회상할 때면 선 감독은 “구단 직원조차도 나를 본 척 만 척 인사를 받지 않을 정도로 무시당했다”고 말한다. 대신 두 번째 시즌인 97년부터 주니치의 수호신으로 자리매김하며 결국 4년간 98세이브로 나고야의 영웅 대접을 받았다.
선동열 감독은 “내가 일본에 갔었기 때문에 그후에 이종범 구대성 정민철 정민태 같은 선수들의 일본 진출이 비교적 수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말 속에선 역시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이런 경력 덕분인지 선 감독은 현재 활약 중인 외국인 선수들에 대해 스스럼없이 평가를 내린다. 국내 리그의 다른 팀 투수들에 대해서도 사석에선 세세한 평가를 자주 하는 편이다. 투수의 능력치를 읽는 눈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동열 감독의 해태 시절 스승이라 할 수 있는 김응용 현 삼성 라이온즈 사장은 감독 시절에 한국시리즈에서 열 차례나 우승했다. 선동열 감독의 최종 목표는 지도자로서 이 같은 기록을 뛰어넘는 것이다. 이번 한화와의 한국시리즈는 그 꿈을 이어나갈 두 번째 길목인 셈이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