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동안 계약금 5억 원, 연봉 3억 5000만 원에 사인하고 LG의 새 사령탑이 된 김재박 감독. ‘우승 제조기’ 김응용 사장도 받지 못했던 파격 대우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그라운드의 여우’ ‘깜짝 야구의 대명사’에 이어 이번에 새로운 타이틀이 하나 더 붙은 김재박 감독(52). 바로 ‘FA(?)대박 감독’이다. 3년 계약에 계약금 5억 원 연봉 3억 5000만 원이란 금액은 ‘우승 제조기’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사장도 받지 못했던 대우다. 한화 김인식 감독이 김재박 감독의 고액 연봉 소식을 듣고 ‘재박이는 받을 만하다’고 인정했던 부분을 떠올리면 감독들 사이에서 김재박 감독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선수 시절은 물론 감독 인생까지 실크로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대표적인 엘리트 출신의 김재박 감독을 만나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승부사의 색다른 면모를 엿봤다.
난 행복한 감독
자리에 앉자마자 ‘다른 감독들이 무척 부러워한다’는 얘기를 전했다. 김재박 감독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그럴 수 있다. 날 질투하는 선배나 후배도 있을 것’이라고 반응했다. 갈 데가 많은 감독, 오라는 데도 많은 지도자. 요즘같이 프로팀 지도자 자리 구하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김 감독은 정말 ‘행복한 남자’다. 그러나 행복해 보이는 이 남자에게도 아픔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성적 때문이다.
“96년 현대 사령탑을 맡은 첫 해에는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지만 97년에는 6위로 곤두박질쳤다. 2년 계약이었기 때문에 정말 심적 고통이 컸다. 대기업의 논리에선 성적 외엔 증명해 보일 게 없다. 잘리는 게 당연했고 감독 맡아서 뭐 하나 해 놓은 것도 없이 그냥 물러날 거라 생각하니까 진짜 힘들더라. 그런데 다행히도 현대에서 3년 재계약을 제의했고 그 다음 해 바로 한국시리즈서 우승을 이뤘다. 11년간의 현대호 수장을 맡으며 재계약 직전의 그때가 가장 괴로웠던 순간들이었다.”
LG행 속전속결
김 감독의 거취 문제는 플레이오프 직전부터 야구계의 핫이슈였다. 현대와 재계약을 할지 아니면 소문으로 나돌던 LG로 옮겨갈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이런 상황에서 김 감독은 현대 선수단 ‘쫑파티’ 때 현대 김용휘 사장과 코칭스태프가 있는 자리에서 ‘부산 갈매기’를 열창하는 바람에 구단 관계자들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그때 왜 ‘부산 갈매기’를 불렀는지 대놓고 물어봤더니 ‘허허’ 하며 웃음부터 흘린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 곡 저 곡 부르다 ‘부산 갈매기’까지 불렀는데 그 다음날 바로 롯데 감독설이 나돌더라.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내 거취에 대해 이렇게까지 많은 관심을 보일 지 몰랐는데 행동 거지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했다. LG행은 플레이오프 끝나고 2~3일 안에 결정난 것이다. 플레이오프 끝나고 LG 구단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20일 발표하기 전날 만나서 모든 내용을 마무리지었다. 워낙 말들이 많아서 속전속결로 이뤄진 것 같다.”
김 감독 자신은 물론이고 수석 코치인 현대 김용달 코치마저 다른 팀 감독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바람에 플레이오프 동안 현대의 팀 분위기가 어지럽혀진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쯤에서 가장 궁금한 것 한 가지! 현대에서 재계약하자는 제의를 물리치고 11년의 정 대신 새로운 인연, LG를 택한 ‘진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질문을 하면서 일부러 ‘리얼토크’라는 타이틀을 상기시키고는 솔직히 말해달라는 부탁까지 첨부시켰다.
“한 가지 이유만이 아니었다. 고민 진짜 많이 했다. 아무리 리얼토크라고 해도 이 자리에서 말 못할 이유도 있다. 분명한 건 10년 동안 한 팀을 맡다 보니 떠나고 싶었다. 현대에는 50대 코치들도 있는 터라 그들에게 기회를 줘야 했다. 가장 걸린 부분이 돌아가신 정몽헌 회장님이다. 살아 계실 때 같이 식사도 하고 와인도 마시며 골프도 치는 등 친분이 돈독했다. 야구단에 워낙 많은 애정을 갖고 계신 분이었는데 그 분의 팀을 떠나는 게 힘들었다.”
한때 젊은 감독이 대세를 이룬 적이 있었다. 선동열 감독이 코치에서 감독으로 올라서고 두산 김경문, 롯데 양상문 감독 등이 등장하며 졸지에(?) 김재박 감독이 프로야구 현역 최고령 감독에 등극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당시의 상황을 얘기했더니 김 감독이 이렇게 풀어낸다.
“난 초보 감독, 젊은 감독이 나오면 반가웠다. 왜냐하면 상대하기 쉬웠으니까. 선수도 연륜이 필요한 것처럼 감독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시즌을 이끌다 보면 어디선가 경험 부족이 노출되기 마련이다.”
순간 삼성 선동열 감독이 떠올랐다. “선동열 감독은 초보 감독이면서 2회 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라갔으니까 예외냐?”고 물었다. 이때 김 감독의 뜻밖에도 다소 ‘쎈’ 답변이 이어졌다.
“삼성이야 돈 주고 사다 놓은 선수들이 많으니까 (좋은 성적을 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현대에서 사들인 선수들 몸값만 해도 140억 원이 넘는다. 그 정도의 재원이 풍부한 팀이라면 누가 맡아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김 감독은 박진만을 가장 아쉬워했다. 한때 ‘김재박 아들’로까지 불렸던 터라 박진만의 공백은 김 감독 입장에선 큰 아픔일 수밖에 없었다.
“(박)진만이를 잡으려고 구단(현대)에서도 애를 썼다. 그러나 워낙 그쪽(삼성)에서 돈을 많이 준다고 하니까 잡기가 힘들었다. 내가 진만이라고 해도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인 나로선 그런 좋은 선수가 빠져 나가면 참 힘들다. 가슴이 쓰릴 정도였으니까.”
김재박 야구 재미없다?
흔히들 김재박 감독의 야구를 ‘재미없다’라고 폄훼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 감독도 이런 얘기를 지겹도록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곧장 이런 반박을 해댄다.
“김재박 야구가 재미없다는 건 대부분 상대팀에서 나온 얘기다. 왜? 지니까. 자기네가 자꾸 지니까 재미없느니, 팬을 생각 안 한다느니 하는 얘기를 한다. 만약 내가 LG에서 번트 대고 이기면 LG팬들은 무지 재미있다고 할 것이다. 왜? 이기니까. 스포츠는 그런 법이다. 이기면 재미있고 지면 재미없는 게 스포츠 논리다. 승부의 세계에서 이기지 못하고 뭘 할 수 있겠나.”
▲ 현대를 네 번 우승시킨 김재박 감독. 과연 LG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사진제공=LG 트윈스 | ||
어렵게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추신수 얘기를 꺼냈다. 아시안게임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서 추신수를 제외한 후 예상치 못한 후폭풍에 속앓이를 했던 터라 김 감독에게 추신수란 이름은 여전히 부담스러울 수 있었다. 김 감독에게 지난주 추신수와 ‘취중토크’를 하면서 나눈 얘기 중 일부만 전달했다. 김 감독은 덤덤한 표정이었지만 목소리 톤을 조금 높여서 말해갔다.
“처음에는 추신수란 선수를 잘 몰랐다. 게임하는 걸 보지도 못했으니까. 그러다 나중에서야 TV를 통해 그가 하는 게임을 봤다. 메이저리그에 있다고 모두가 훌륭한 선수는 아니다. 경험이 중요하다. 그러나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수 아닌가. 그 정도의 실력은 한국에서 뛰는 선수들 중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한국 야구를 위해 고생하고 노력한 선수들에게 좀 더 많은 혜택을 주자는 게 내 취지였다. 지금도 난 내 방침이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는다.”
김 감독은 아직 나이가 어린 추신수에게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수가 보는 선수 선발과 감독이 보는 선수 선발 원칙과 기준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란 얘기도 덧붙였다.
개성 강한 LG팀 각오
김 감독은 LG에서 이탈 직전인 마해영을 붙잡겠다는 뜻을 밝혔다. 선수단 상견례 후 마해영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며 팀 색깔이 바뀌고 팀 감독이 바뀐 LG에 남아 팀을 위해 뛰어줄 것을 부탁할 예정이라고 한다.
“LG 선수들이 개성이 강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모든 건 팀의 룰 속에서 이뤄진다. 팀워크를 해치고 원칙이 무시되는 상황에서의 선수 개성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돈 받고 뛰는 프로 선수라면 그 값을 해야 되는 것이고 모든 것에 모범이 돼야 한다. 그게 앞으로 내가 또 우리 선수들이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김 감독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치 없는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혹시 선수 시절 사고 쳐 본 적 있으세요?” “아뇨. 없어요. 어떻게 사고 치는 지도 모르고 운동했어요.”
LG 선수들, 지금부터 긴장 좀 해둬야 할 것 같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