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넷 중에서 기현이가 아버지 성격을 많이 닮았다. 참을성 많고 속이 깊으며 자기 걸 챙기기보다는 남 주는 걸 더 좋아하는 부분 등이 아주 비슷하다. 그러다보니 기현이 주위에 사람이 많다. 새로운 곳에 가도 금세 사람을 끌어 모으는 재주가 있다.
벨기에 시절 통역조차 없어 벽 보고 살았다고 할 만큼 귀머거리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내가 직접 그곳에 가봤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는 고통이 조금은 짐작이 된다. 동료와 감독과 의사 소통이 되지 않는 팀에서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며 힘든 시간들을 보낼 때 기현이에게 ‘구세주’처럼 나타난 누나가 있다. 벨기에 현지 유학생으로 축구를 좋아했던 그 사람은 아무 대가 없이 기현이의 통역을 자처했고 기현이와 함께 다니며 ‘입’과 ‘귀’가 돼줬다. 기현이가 그 은인을 만난 것은 특유의 친화력 때문이다.
형제가 많았던 집안. 먹을 것, 입을 것이 항상 아쉬웠던 가정 환경이었지만 기현이가 괜찮은 성품을 지닌 데에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 이어진 형제애를 무시할 수 없다. 집안에 운동 선수가 있다 보면 다른 형제들은 뒤로 밀리기 십상이다. 그래도 우리 집안에선 누구 하나 기현이를 탓하지 않았다. 자신이 못 먹고 못 입어도 기현이가 잘 되길 바랐다. 끈끈한 가족애 형제애가 기현이에게 큰 힘과 용기를 준 것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