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 출신인 이만수 코치와 어울리지 않을 거란 우려에 대해 김성근 감독은 “관심 끌겠네”라며 넉넉한 여유를 보였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러나 정작 그들을 직접 만난 이후의 느낌은 선입견은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외부의 선입견을 즐기려 했고 두 사람이 언제 싸우는지 보러 야구장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 같다며 넉넉한 여유를 선보였다. 그 말이 가식인지 진심인지는 내년 시즌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야구 변방과 조연 인생에 충실했던 김성근 SK 감독과 야구 중심부에서 주연과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했던 이만수 수석코치. 출신 성분과 ‘놀던 물’들이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었지만 곰곰이 따지고 들면 닮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마무리 훈련 중인 SK 와이번스의 제주 캠프에서 김성근 감독과 이만수 코치를 만나 릴레이 인터뷰했다. ‘어색한 동거’로만 보였던 그들은 너무나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쏟아냈다.
김성근(김): 이(만수) 코치! 사람들은 왜 우리가 잘 안 어울릴 거라고 생각할까? 내가 보기엔 괜찮아 보이는데….
이만수(이): 그렇죠? 제가 인물이 뛰어나진 않지만 어디 가서 빠지는 편도 아닌데, 감독님도 이전보다 얼굴이 훨씬 더 좋아지셨어요(이 얘기를 들은 김성근 감독이 “자네, 시력이 안 좋아졌구먼”이라고 말해 모두가 쓰러지고 말았다). 사실 좀 놀랐습니다. 김성근 감독님 하면 카리스마와 근성으로 대변되는 분이신데 너무 많이 웃으셔서 감독님이 진짜 맞나 싶었다니까요.
김: 나이가 든 거지. 나이들면서 이전에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들도 볼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 2년간의 일본 생활이 참 많은 변화를 줬어. 채우고 버리는 부분을 확실히 깨닫게 해줬거든. 우리 둘이 언제 싸우는지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그런 관심이라도 난 기쁘게 받아들이려고 해. 김성근이가 언제 이런 관심을 끌어보겠어.
이: 미국에서 간간이 기사를 통해 감독님 소식은 들었어요. 박찬호와 이승엽이가 감독님 도움을 많이 받았죠.
김: 도움은 무슨…. 그들 덕분에 내가 유명세를 탔지. 기자들이 많이들 연락해 오더라구. 내 안부를 묻는 게 아니라 주로 그 친구들 소식이 궁금해서였지 하하. 그런데 이 코치, 오늘(11월 1일) 여기 제주도에서 첫 훈련을 시작했는데 소감이 어때?
이: 어이쿠, 소감은요. 아직도 정신이 없어요. 한국 들어와서 수면 시간이 몇 시간도 채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신기하게 피곤하지 않네요. 오늘 선수들 훈련하는 거 보니까 새로운 자극과 용기를 얻게 됐어요. 무엇보다 감독님이 너무 부지런하셔서 제가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어제도 코치들은 오자마자 점심 먹느라 바빴는데 감독님은 바로 야구장에 가셔서 시설이나 환경 등을 점검하셨잖아요. 훈련 프로그램 준비해 오신 거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언제 그걸 다 계획해 두셨는지 궁금할 정도였으니까요.
이: 하하. 겨울 훈련과 스프링캠프를 통해 바꾸고 보완하고 채워둬야 할 게 많은 팀인 것 같아요. 고마운 건 선수들 자세예요. 야간 훈련에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따랐으니까요(실제로 SK 선수들은 저녁 식사 후 저마다 방에서 방망이를 들고 나왔다. 그들의 신분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깜짝 놀랄 만한 광경이었다. 체격 좋은 젊은 사람들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숙소를 돌아다니니 흡사 ‘조직원’들 같이 보였던 것이다).
김: 사실 지바 롯데의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돌아올 때 참 많이 쓸쓸했어. 마린스 라커룸에서 짐을 정리하니까 작은 가방 하나로 충분하더라구. 야구장을 걸어 나와 지하철까지 가는데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거야. ‘아, 사람은 이렇게 혼자 왔다 혼자 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SK 감독으로 취임식을 할 때에도 뭐랄까, 좀 어리둥절한 느낌이었어. 갑자기 생소해졌다고나 할까. 오늘 훈련을 시작하니까 이제야 비로소 내가 감독이 된 게 실감이 나. 선수들도 눈에 들어오고.
이: 저 또한 9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회한이 있었어요. 오고 싶을 때도 있었고 오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친정팀으로 가고 싶은 적도 있었어요. 그러나 기회와 인연은 따로 있나봐요. SK는 지금까지 저에게 세 번이나 ‘콜’을 보냈어요. 한 번은 직접 미국까지 찾아왔을 정도로 관심을 나타냈죠. 마지막 세 번째 ‘콜’을 받아들였는데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이만수가 삼성과 함께 패키지로 엮이는 이미지를 이제는 철저히 씻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주니까. SK에서 좋은 성적 내고 팬 서비스 잘하다보면 ‘이만수=삼성’이 아니라 ‘이만수=SK’가 될 수 있으니까.
이: 기자들이 삼성에 대해 자주 물어들 봐요. 삼성의 우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사실 제 입장에서 뭐라고 말하겠어요. 당연히 축하해 줘야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대구의 야구팬들이 점점 줄어 들고 있다는 얘기에 좀 답답해지더라구요. 스포츠 세계에서 우승은 가장 큰 목표죠. 그러나 그 목표를 위해 팬들을 간과해서는 안돼요. 대구 팬들의 야구 사랑이 야구 외면으로 이어진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 고국에서 지도자로 첫발을 떼는 이만수 코치는 김성근 감독의 배려에 고마움을 표했다. | ||
이: 어이쿠 감독님, 그런 말씀 마세요. 신앙은 우러나야 하는 것이죠. 간혹 사람들은 제 종교를 가지고 ‘태클’을 걸기도 해요.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선수나 코치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구요. 만약 지도자가 선수들과 같이 술 마시고 어울려야 하는 생활이라면 전 지도자 포기했을 겁니다. 야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인데 다른 건 이유가 될 수 없는 거잖아요.
김: 이 코치도 알다시피 내가 8개팀 감독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김응용(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있을 때는 비빌 언덕이라도 있었는데 내가 나이로는 ‘대빵’이다 보니 어깨가 무거워져. 내가 잘해야 감독 수명이 길어질 게 아닌가. 시행착오를 줄여야 하는데 얼마나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드네. 이 코치도 지도자로 자리 잡는데 내가 많은 걸 도와주고 싶어. 나야 ‘잘리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지만 자넨 그렇게 가면 안 되잖아. 구단으로부터 인기있는 지도자로 클 수 있도록 잘 도와주고 싶네.
이: 정말 고맙습니다. 워낙 성격이 대쪽 같으신 분이라 걱정도 많았는데 직접 뵙고 얘기 나누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제가 행운아인 것 같아요. 감독님을 모시고 수석코치로 일할 수 있게 돼서요.
김: 그런데 SK에서 내세우는 스포테인먼트(spotainment =sports+entertainment)말야. 난 그 말이 너무 어려워. 뭐 좀 쉬운 표현 없을까?
이: 전 쉬운데요. 발음하기도 편하잖아요.
김: 역시 ‘미국통’이라 다르군. 어쩐지 훈련 프로그램을 짜라고 줬더니 죄다 영어로 써놨더라구. 나까지 한자를 쓰면 선수들이 돌겠지? 하하하.
젊은 이만수 코치보다 조금 더 나이 많은(?) 김성근 감독의 유머와 농담이 상당한 수준을 자랑했다. ‘조연’과 ‘주연’ ‘변방’과 ‘중심’ ‘마이너’와 ‘메이저’ 등 대변되는 프로필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그들은 ‘어색한 동거’가 절묘한 하모니로 SK 선수단을 이끌고 있었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