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29일 한국시리즈 6차전 9회 말 2사 만루 상황에서 한화 데이비스를 삼진으로 처리하며 우승을 확정지은 오승환 진갑용 배터리가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 ||
매년 그렇지만 한국시리즈 동안에는 경기 외적으로 야구장 안팎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시리즈 동안 무대 위와 무대 바깥에서 벌어진 일들을 방담 형식으로 돌이켜 봤다.
▲음주측정이라도 해볼까
한국시리즈 1차전이 벌어진 10월 21일 토요일이었습니다. 오후 2시 낮 경기였기 때문에 취재진이 일찌감치 대구구장에 도착해 양 팀 덕아웃을 들락거리며 기삿거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기자를 통해서 “한화 데이비스한테서 술 냄새가 심하게 난다”는 얘기가 나돌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빙초산’ 냄새가 확 풍긴 것이지요.
한화는 하루 전인 10월 20일 대전에서 대구로 이동했습니다. 데이비스가 한국시리즈 1차전이라는 중요한 날을 앞두고 과연 술을 마셨겠는가, 아닌가를 놓고 취재진 간에 말들이 많았습니다. “진짜 술 냄새가 맞다”는 의견과 “그래도 설마 오늘 같은 경기를 앞두고 만취했겠느냐”라는 반박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 기자가 “음~, 음주 측정기를 구해올까?”라고 해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당사자에게 “술 마셨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결국 실제 음주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한화는 데이비스와 클리어, 두 용병 타자의 부진 때문에 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데이비스는 집중력이 부족한 수비로 논란이 됐고 결국 시리즈 마지막 날인 6차전 9회말 2사 만루 찬스에서 삼성 오승환에게 무기력하게 삼진 처리 당했습니다. 데이비스는 한국을 좋아하고 동료들과도 친한 ‘한국형 용병’으로 유명한데요, 이번 시리즈에선 여러모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스승님 앞에선 입조심
삼성 선동열 감독은 4차전이 끝난 뒤 묘한 말을 남겼습니다. “김인식 감독님이 계신 한화가 아니라 다른 팀이 올라왔다면 꽤 시끄러운 한국시리즈가 됐을 것이다.”
김인식 감독과 선동열 감독은 80년대 후반 해태에서 수석코치와 선수로 한솥밥을 먹었습니다. 이런 인연을 떠나더라도 평소 원정경기 때면 따로 만나 식사를 할 정도로 친분이 두텁습니다. 선 감독 입장에선 ‘스승님’과 혈전을 벌인 셈이죠.
그러다보니 김 감독은 삼성과 관련해 비교적 자유롭게 이런 저런 평가를 할 수 있었지만 선 감독은 한화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 감독이 말한 ‘한화가 아닌 다른 팀’은 현대를 뜻한 것이죠. 현대는 한화와의 플레이오프에서 1승3패로 역전패하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김재박 감독(현 LG)이 현대를 맡고 있었습니다.
정규시즌 마지막 날에 김재박 감독이 “1위 삼성, 기다리라고 해!”라는 발언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2년 전에도 김재박 감독이 삼성과 선동열 감독을 겨냥해 “우승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직격탄을 날린 적이 있습니다. 선 감독은 평소 남의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는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현대가 한국시리즈 파트너가 됐다면 선 감독과 김 감독이 마음껏 장외 설전을 벌였을 것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물론 김 감독의 LG행은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발표됐을 겁니다.
▲ 삼성 선동열 감독에게 배영수가 샴페인을 쏟아부으며 승리감을 만끽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한화는 포스트시즌 들어 홈에서 승리할 때마다 축하 폭죽을 터뜨렸습니다. 모그룹이 화약 회사라 한화의 폭죽 쇼는 예전부터 유명했는데요. 대략 경기당 5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화 선수들이 한창 시리즈가 열리는 도중에 “제발 폭죽 좀 터뜨리지 말게 해 달라”는 우스갯소리를 취재진에게 해 눈길을 모았습니다.
문제는 한화가 우승할 경우 선수들에게 나눠줄 배당금에서 제반 경비를 제외한다는 것이죠. 한화 선수들은 “폭죽이라도 덜 쏴야 배당금이 많아질 것 아니냐”고 입을 모았습니다. 하늘에 돈을 뿌리지 말고 다만 얼마라도 선수들에게 얹어달라는 얘긴데요. 물론 농담조의 어투였지만 이는 상대팀 삼성과 비교되기 때문에 나온 불만의 목소리이기도 했습니다.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마다 선수단을 등급별로 나누어 거액의 포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통상 다른 구단의 두 배 정도 되는 돈을 풀어왔습니다. 한화 선수들로선 은근히 부러움을 느낄 만도 합니다. 치열한 시리즈를 펼치고 있으면서도 포상금 규모를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리는 한화 선수들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한편 4차전까지 3승 1패를 거두며 우승을 눈앞에 둔 삼성 선수들 사이에선 “사상 최고의 포상금이 지급된다고 하더라”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2년 연속 우승이니 종전 포상금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 될 것이라는 얘기였지요. 몇몇 선수는 “50억 원까지 준다고 하던데, 그러면 A급 선수는 1억 5000만 원 정도는 되겠다”며 들뜬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삼성은 예년 수준인 ‘총액 30억 원+α’에서 더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한화와는 또 달리 삼성 선수들도 헛물을 켠 셈이 됐습니다.
▲헉! 임창용마저
이번 한국시리즈의 최대 승부처는 대전구장에서 열린 3차전이었습니다. 3-3 상황에서 연장 12회 접전을 벌인 끝에 삼성이 4대3으로 승리하면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사실 3차전에선 삼성이 다 진 경기를 이겼다고 봐야 합니다. 마무리 오승환이 동점 2점 홈런을 허용하면서 무너졌기 때문에 순식간에 덕아웃 분위기가 싸늘해졌죠. 반대로 한화는 기세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당초 열세라던 전력이었지만 3차전을 잡고 2승1패가 되면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셈이었지요.
하지만 3차전에선 결국 연장 12회 초 삼성이 박진만 적시타로 1점을 냈고 12회 말 수비 때 임창용이 ⅓이닝을, 배영수가 ⅔이닝을 막아내며 극적인 승리를 따냈습니다. 김인식 감독은 3차전 직후 “이건 뭐, 뒤로 갈수록 좋은 투수가 나오니 이길 수 없었다. 창용이마저 148㎞를 펑펑 찍어대니…”라며 막판 투수 싸움에서 기세가 눌렸음을 토로했습니다.
실은 임창용 투입은 당초 배영수를 위한 ‘시간 벌기’에 불과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선 감독은 다음날 선발인 배영수를 마무리로 끌어 쓰기로 결정했는데 문제는 배영수가 어깨를 풀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임창용을 먼저 내보내 한 타자를 상대하게 하면서 배영수에겐 몸 풀 시간을 충분히 준 겁니다.
임창용은 올 시즌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때문에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야 팀에 복귀했습니다. “공이 좋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감독 입장에선 갓 복귀한 선수를 큰 경기에 내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요. 결과적으로는 김인식 감독이 임창용마저 싱싱한 공을 뿌리는 것에 질겁을 했고, 선 감독 입장에선 임창용에게 신뢰감을 느낀 계기가 됐습니다. 임창용이 3차전에서 책임진 ⅓이닝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양 팀 모두에 상당한 영향을 준 셈입니다.
링크 : 선수들의 부킹 거부 사건 등 '삼성의 KS 우승 그후 24시간'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