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야구에 데뷔하자마자 ‘괴물’이란 별명을 얻으며 승승장구한 류현진. 임준선기자 kjim@ilyo.co.kr | ||
2006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류현진의 존재는 당시 사상 최고 계약금을 받은 한기주(KIA)를 비롯해서 유원상(한화) 나승현(롯데) 등에 밀려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1차 지명에서 연고팀인 SK에게 외면당했고 2차 1번 지명권을 갖고 있던 롯데에게도 선택받지 못하다 2차 전체 2번으로 한화에 입단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에 입단한 첫 해, 시즌을 쥐락펴락하더니 신인왕은 물론 MVP까지 거머쥐었으니 부모의 감동과 감격은 오죽했을까.
류현진이 세상에서 가장 닮고 싶어 한다는 아버지 류재천 씨가 털어 놓는 ‘별들의 탄생 신화’ 류현진 편을 새롭게 시작한다.
단상 위로 올라가 꽃다발을 건네줬다. 현진이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고 돌아서 나오는데 갑자기 가슴 밑바닥에서 뭔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가슴이 뭉클거리며 눈가에 물기가 아른거렸다. 아들 앞에서 웬 망신인가 싶어 얼른 뒤돌아 내려왔지만 들뜬 기분은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신인왕은 어느 정도 예상했는데 MVP는 정말 아리송했고 도통 확신이 서지 않았다. 공식적인 발표가 나기 전까지 두근두근, 조마조마한 심정뿐이었다. 전날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수상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운 탓에 가벼운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그런 사이에 류현진의 MVP 수상이 확정된 것이다.
▲ 류현진(오른쪽)과 두 살 위 형. 류현진은 어릴 적부터 덩치가 꽤 좋았다. | ||
자식을 운동 선수로 키우는 부모는 많다. 그러나 나처럼 이런 영광과 감격을 누리는 부모는 그리 흔치 않다. 야구하면서 프로에 입단하기도 어렵지만 그 많은 프로 선수들 중에서 한 시즌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수상하는 선수가 몇이나 될까. 현진이의 수상이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이라고 하니까 그 의미와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된다. 그래서 기뻤다. 너무나 어렵고 대단한 일을 해냈으니까.
그런데 수상을 한 지 하루가 지나니까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왔다. 부담 때문이었다. 두 개의 큰 상을 받은 만큼 다음 시즌에 현진이의 기대치가 훨씬 커졌을 텐데 과연 내 아들이 어깨의 짐을 의식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본 현진이가 이런 말로 나의 답답증을 싹 풀어줬다. “아빠, 난 올시즌 끝날 때부터 내년 시즌을 준비했어요. 걱정마세요. ‘2년차 징크스’란 말 자체가 들리지 않게 할 테니까.”
돌이켜보면 현진이의 야구 인생을 함께 엮어 가면서 오히려 내가 더 신바람 났던 것 같다. 워낙 운동을 좋아했고 야구 광팬으로 살았기 때문에 아들 녀석의 야구 생활은 아버지인 날 더 설레게 했다.
▲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입단 첫 해에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받았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 현진이는 오른손잡이다. 밥 먹을 때나 글을 쓸 때, 모두 오른손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야구할 때만 왼손잡이가 된다.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도 모르겠단다. 왼손을 쓰는 게 편해서라고 하는데 처음엔 참으로 신기했다.
당시 집에 오른손 글러브밖에 없어서 야구 놀이를 할 때 현진이는 글러브를 낀 왼손으로 공을 잡고 글러브를 빼서 다시 왼손으로 공을 던졌다. 왼손 글러브를 처음 사준 게 창영초등학교로 테스트를 받으러 갔던 날이다. 학교 근처의 문방구에서 비닐 소재의 왼손 글러브를 사준 게 처음이었는데 그 비닐 글러브는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용하고 버렸다. 왜냐하면 다음날 선수용 왼손 글러브를 사줘야 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