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이란과의 축구대표팀 아시안컵 예선 최종전에서 이란에 0-2로 패한 직후 선수들 모습. 연합뉴스 | ||
홍명보 코치가 임지로 지휘봉을 잡았던 일본 올림픽팀과의 친선 경기 전적까지 포함하면 베어벡호의 성적은 2승3무2패다. 2승이 아시안컵 B조 예선 6경기에서 전패하고 무득점에 24실점을 기록한 대만을 상대로 거둔 것이라고 한다면 베어벡호의 성적표는 내세울 게 없다.
2006 독일 월드컵이 채 끝나기도 전인 지난 6월 26일 대한축구협회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후임으로 당시 코치였던 핌 베어벡을 선임했다. 한국이 하노버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독일 월드컵 G조 조별리그 최종전 스위스전에서 0 대 2로 져 16강 진출에 실패한 지 사흘 만에 나온 빅뉴스였다.
축구협회의 베어벡 감독 선임 발표 시점은 절묘했다. 스위스전에서 불거진 오라시오 엘리손도 심판의 ‘오프사이드 오심 논란’과 “옳은 판정이었다”고 말한 SBS 신문선 해설위원에게 팬들의 분노가 집중돼 있던 때였다.
독일 월드컵이 열린 현지에서 기술위원들이 고심 끝에 찾아낸 위기 돌파 카드는 차기 감독의 조속한 선임이었다. 하지만 독일 월드컵 최소한의 목표였던 16강 진출을 이루지 못한 패장을 보좌했던 코치 베어벡의 감독 영전은 처음부터 여론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나마 베어벡 감독이나 축구협회가 비난을 덜 받은 이유는 홍명보 코치 때문이었다. 언론 스스로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월드 스타로 성장시킨 홍명보라는 거물을 비판하고 나선다는 게 쉽지는 않았던 것이다. 베어벡 감독이나 축구협회 역시 이런 점을 간파하고 홍명보 코치를 유임시켰다.
▲ 지난 9월 대만전 때 홍명보 코치와 베어벡 감독. | ||
일부에선 베어벡 감독이 축구협회와 계약한 기간이 2년인 점을 감안해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땐 태극호의 선장이 홍명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 때부터 외국인 지도자에게 내줬던 ‘축구 주권’을 이젠 되찾아올 때가 됐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가고 있고, 그 대권을 맡길 적임자가 홍명보라는 얘기다.
이란 원정을 마치고 귀국한 베어벡 감독은 홍명보 코치로부터 지휘권을 회수해 21일 일본 올림픽팀과 원정 친선 경기를 갖는다. 베어벡 감독이 일본과의 경기에서 어떤 결과를 내느냐에 따라 대표팀 코칭스태프내의 기류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표팀을 바라보는 언론과 팬들의 시각도 상당 부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베어벡 감독은 국가 대표팀은 물론 아시안게임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까지 청소년 대표팀 이상의 한국 축구 대표팀을 도맡았다. 취임 때 단기 목표로는 도하 아시안게임과 내년 아시안컵 우승을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 6일 회견 땐 다소 다른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아시안게임 우승이 목표라고는 했지만 우승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는 것이었다.
일부에선 자신감을 상실한 베어벡 감독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는 분석을 했다. 아시안게임 준비 과정이라고 했던 이란전을 만신창이 상태에서 치렀고 두바이에서 갖게 될 전지훈련 역시 선수도 코칭스태프도 둘로 나뉘어 진행되는 반쪽 훈련이다.
현재로선 한국 축구가 20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차지할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축구협회가 어떤 일이 있어도 내년 아시안컵까지는 베어벡호를 신뢰하겠다고 했지만 당장 아시안게임이 베어벡호의 운명을 결정할 1차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조상운 국민일보 체육부 기자 swc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