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식 감독 | ||
감독들도 높은 연봉을 바라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다른 팀 감독의 몸값 추이에 신경을 쓰곤 한다.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 126경기 가운데 감독의 판단이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는 5% 안팎이라는 속설이 있다. 한 시즌 전체로 봤을 때 감독의 능력은 큰 변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얘기다. 이렇게 보면 감독들 간의 몸값 차이는 선수 경우와 달리 개인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최근 몇 년간 팀 성적이 좋았다면 당연히 감독 몸값도 올라간다. 하지만 그 외에 무언가가 있다. 때로는 A라는 팀 감독의 연봉 계약이 B 팀 감독의 몸값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 파격 대우 ‘국민 감독’
한화 김인식 감독이 이달 초 계약금 3억 5000만 원, 연봉 3억 5000만 원에 3년간 재계약했다. 총액 14억 원. 지난 2년간 연봉 2억 원을 감안하면 대폭 상승이다. 2년 연속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한다 해도 꽤 파격적인 계약이었다. 야구계에선 이 정도 인상을 예상치 못했었다.
올초 WBC에서 한국대표팀을 4강으로 이끈 뒤 ‘국민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게 몸값 대폭 상승의 원동력 중 하나다. 김 감독은 최근 “WBC 이후에는 대전 시내에, 심지어 외곽으로 나가서 아무 음식점이나 가도 밥값을 안 받겠다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지 몰라”라고 말했다. 역대 어느 감독보다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것이다.
WBC 외에 몸값 상승의 결정적 원동력은 아이로니컬하게도 LG 김재박 감독이었다. 김재박 감독은 올 시즌을 마친 뒤 현대에서 LG로 옮기면서 계약금 5억 원, 연봉 3억 5000만 원에 3년 계약으로 총액 15억 5000만 원을 기록했다. 김재박 감독은 최근 3년간 연봉 2억 5000만 원으로 프로 감독 중 최고액이었다. 게다가 LG가 최고 감독을 영입하겠다며 스카우트한 상황이기 때문에 몸값이 더욱 많이 뛰었다.
김재박 감독의 계약이 먼저 발표됐다. 그러자 한화로선 고민이 커졌다. 명색이 ‘국민 감독’인 김인식 감독의 처우를 연배가 아래인 김재박 감독보다 낮게 책정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결국 한화는 김인식 감독에게 김재박 감독과 똑같은 연봉 3억 5000만 원을 선물했다.
▲ 김재박 감독(왼쪽), 선동열 감독 | ||
삼성 선동열 감독도 덩달아 반사 효과를 얻을 전망이다. 사령탑 부임 후 곧바로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선 감독의 연봉은 2억 원. 삼성 김재하 단장을 비롯한 구단 고위층은 “LG 김재박 감독이 연봉 3억 5000만 원을 받는데 성적으로 보나 뭘로 보나 선동열 감독도 그 정도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입장이다. 선 감독은 연봉 2억 원의 계약이 아직 3시즌이나 남아있다. 하지만 내년부터 보너스 형식이 됐든, 10개월로 나눠 지급하는 연봉 형식이 됐든 몸값을 3억 5000만 원 수준으로 올려 줄 가능성이 높아졌다.
감독 몸값의 변화 추이를 보면 역시 ‘최고’란 수식어를 위한 각 구단들의 의도가 엿보인다. 삼성 김응용 사장이 2000년 말 해태에서 삼성으로 옮길 때 5년간 총액 13억 원짜리 계약을 했다. 그리고 지난 2004년 말 선동열 감독이 삼성 사령탑에 오를 때 계약금 5억 원, 연봉 2억 원에 5년 계약을 했다. 총액 15억 원이었다. 이는 곧 ‘김응용 감독’의 몸값 총액을 돌파했다는 걸 의미한다.
최근 김재박 감독의 계약 내용은 선 감독의 2004년 말 계약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도 있다. 총액 15억 5000만 원짜리 계약은 결국 선 감독의 15억 원짜리 계약을 뛰어 넘은 셈이다. 선 감독 측으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선 감독은 계약금 5억 원에 지난 2년간 연봉 합계 4억 원을 받았다. 나머지 3년간 3억 5000만 원 수준의 연봉을 계속 받게 되면 5년간 몸값 총액은 19억 5000만 원으로 올라간다. 결국 ‘선동열→김재박→선동열’ 식으로 일종의 핑퐁 게임이 진행된 셈이다.
# 상대적으로 초라한 그들
최근 2~3년간 감독 몸값은 상당히 많이 뛰어올랐다. 99년으로 돌아가 보자. 해태 김응용 감독(이하 당시 소속팀 기준)이 연봉 1억 2000만 원으로 가장 몸값이 비쌌다. 현대 김재박 감독, LG 천보성 감독, 두산 김인식 감독이 모두 1억 원이었다. 삼성 서정환 감독과 롯데 김명성 감독이 9000만 원, 쌍방울 김성근 감독, 한화 이희수 감독이 8000만 원이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올겨울 ‘감독 몸값 폭등’이란 얘기가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전반적인 몸값 인플레이션의 혜택을 모두 받고 있는 건 아니다. 올 시즌 롯데 강병철 감독의 연봉이 1억 7000만 원, KIA 서정환 감독이 연봉이 1억 5000만 원이었다. 그러다보니 속상할 만도 하다. 서정환 감독의 경우 최근 사석에서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연봉에 대해 탄식을 내뱉었다는 후문이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