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스 민렌드. 연합뉴스 | ||
# 5개 구단 ‘민렌드 쟁탈전’
이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선수들이 한국 무대를 노크하는 와중에도 꾸준히 ‘최고 용병’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선수가 있으니 그가 바로 찰스 민렌드(33·창원 LG)다. 프랑스와 이스라엘을 거쳐 지난 03~04시즌 KBL 드래프트를 통해 전주 KCC에 입단한 민렌드는 첫 해 경기당 평균 27.1점 11.3점 2.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소속팀 KCC에게 우승컵을 선사했다.
이때부터 민렌드의 ‘코리안 드림’은 무럭무럭 커나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변함없는 활약을 펼치는 최고의 ‘한국형 용병’으로 자리를 잡은 그는 KCC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된 05~06시즌에도 28.6점 9.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이(이상민)-조(조성원)-추(추승균) 트리오’와 함께 KCC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06~07시즌에도 KCC와 민렌드와의 재계약에 의문을 달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모든 팀들이 최고의 테크닉에 노련한 경기 운영, 심판 판정에 깨끗이 승복하는 매너까지 갖춘 민렌드를 용병 선발의 기준으로 삼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펼쳐지고야 만다. KCC가 민렌드와의 재계약을 깨끗이 포기한 채 다른 모든 구단들에게 민렌드와의 협상 루트를 열어준 것이다. 이후 최대 5개 팀까지 뛰어든 ‘민렌드 쟁탈전’이 전개됐고 최후의 승자는 민렌드를 한국 무대로 데뷔시킨 장본인, 신선우 감독의 창원 LG였다.
# KCC 재계약 포기한 까닭
많은 이들이 민렌드의 LG행에 앞서, 그를 버린 KCC의 선택에 의아해했다. 한국 생활 4년째에 접어드는 민렌드가 끊임없이 구단의 골치를 썩여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민렌드가 새로 부임한 허재 감독과 시즌 내내 마찰을 빚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KCC가 민렌드를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수준의 선수와 계약을 마무리했다는 얘기도 있었고, 민렌드에게 치명적인 부상이 발생했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이미 3시즌 째 충분히 검증된 최고의 선수가 구단의 재계약 제의마저 받지 못했으니 갖가지 소문이 피어날 만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KCC가 도대체 왜 민렌드를 다른 구단으로 갈 수 있게 놔뒀냐는 점이다. KCC가 설사 민렌드를 원치 않았다고 해도 다른 구단들 역시 민렌드를 영입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충분한 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KBL의 용병 관련 조항에는 ‘시즌 종료 후 원소속 구단의 재계약 제의를 거부한 선수는 향후 5년간 KBL에서 활약할 수 없다’는 독소조항이 있다. 이 조항으로 인해 많은 구단들이 ‘나도 먹기 싫지만 남도 못 먹게 만드는’ 교묘한 수법을 써왔다.
▲ 허재 감독(위), 신선우 감독 | ||
한국 프로농구를 속속들이 꿰고 있던 민렌드에게 이 조항은 두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한줄기 햇살과도 같았다. ‘물론’ 제한 금액을 훨씬 초과한 계약서를 손에 쥐고 있었던 민렌드는 급기야 KCC 고위층에게 ‘계약서를 공개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나를 순순히 놔주던가 아니면 계약서를 공개하고 망신당한 뒤 거액의 범칙금을 내라”는 식이었다. 이처럼 뒤통수를 맞은 KCC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모든 구단이 28만 달러 제한 규정을 어기는 것이야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지만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된다면 그룹의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A구단에서 LG로 급선회
그렇지만 KCC라고 해서 순순히 민렌드의 청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사면초가에 휩싸인 KCC는 나름대로 명분을 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을 것이다. 이후 민렌드와 계약 직전까지 갔던 A 구단이 있었는데 KCC는 A 구단과 사전에 무언가 교감을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민렌드를 자유롭게 풀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는데 민렌드의 에이전트를 통해서 A 구단에 협상 우선권을 줄 테니, 신인지명권이나 국내 선수 트레이드 등의 보상을 해달라는 식의 제안이 가능했을 것이다(이런 소문이 실제로 무성하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각 구단들의 용병 영입 경쟁이 한창이던 2006년 6월 초. 미국의 올랜도에서는 NBA 신인 드래프트에 앞서 열리는 농구 캠프가 열렸다. 이곳에 A 구단 관계자들은 민렌드의 에이전트와 함께 모습을 나타낸다. KCC와의 사전 거래를 모두 마무리 짓고 최종 계약만을 남겨놨음을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KCC로서는 민렌드를 잃게 됐지만 만만치 않은 보상을 A 구단으로부터 챙김으로써 실속을 차릴 수 있게 돼 이대로 마무리만 된다면 양 측 모두 ‘윈윈’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A 구단 관계자와 민렌드의 에이전트가 계약서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을 즈음, 1시간 여 떨어진 민렌드의 자택에는 이미 LG 관계자들이 두둑한 돈뭉치를 들고 둘러앉아 있었다. 신선우 감독과 민렌드, 그리고 유도훈 코치의 부인과 민렌드 부인의 인간적 유대, 여기에 LG스포츠단의 막강한 자금력이 힘을 더하며 막판에 민렌드의 마음을 돌려버린 것이다. 계약서 사인만을 기다리다가 갑자기 연락이 끊겨 당황한 A 구단 관계자를 뒤로 하고, LG의 신 감독과 구단 관계자들은 민렌드와의 계약서를 손에 들고 유유히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원준희 농구 전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