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S로마 이적을 번복한 후 이영표의 입지가 구단에서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영국 현지 기자들은 아까운 기량을 썩히는 것보다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충고하고 있다. | ||
지난 8월 이영표는 이탈리아 명문팀인 AS로마의 러브콜을 마지막 시점에 거부했다. 국내 방송사와 가진 국제 전화인터뷰에서 ‘기쁜 마음으로 로마에 가겠다’고 했던 이영표의 AS로마 이적 무산은 뒷말이 무성했다. ‘종교적인 이유에서다’ ‘마틴 욜 감독의 미움을 받을 것이다’ ‘주전이 힘들 것 같다’는 갖가지 추측이 이어졌다.
그리고 우려가 현실로 바뀌었다. 이영표는 2006-2007 시즌 전반기 동안 벤치 신세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영표와 에이전트사인 지쎈은 ‘구단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선수 측의 바람과는 달리 토트넘 홋스퍼에서 이영표의 입지가 좁아진 것은 분명하다.
영국 현지 기자들이 보는 이영표의 잔류와 이적에 대한 의견을 전화 인터뷰를 통해 정리해 본다.
최근까지 이탈리아 언론들은 ‘이영표의 AS로마 이적’을 줄기차게 보도하고 있다. 이영표 측은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고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물론 이영표가 이적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겨울 이적시장이 다가와 봐야 알 것이다. 이영표가 지난 8월 AS로마 이적을 거부했던 일에서도 알 수 있듯 결정권은 선수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잉글랜드 현지의 축구기자들도 이영표가 이적을 하는 게 낫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구단의 선수 수급방침이 있는데 이영표는 이적 선수로 분류됐다는 다소 ‘쎈’ 이야기부터 이적 불가피론까지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데일리 스타>의 마틴 로저스 기자는 이영표가 토트넘에 남겠다고 결정한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AS로마로 가겠다고 했다가 최종 사인만 남겨놓고 잔류를 선언해 구단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미 8월 말 여름 이적 기간 중 이영표는 토트넘의 선수 수급 계획에서 방출 선수로 분류됐다는 점을 눈치챘어야 했다고 충고했다.
그는 “토트넘이 이영표를 강력히 원했다면 AS로마행을 허락했겠냐”며 “이영표 같은 선수가 기량을 벤치에서 썩히는 것보다는 겨울 이적 기간 중에 주전으로 뛸 수 있는 구단으로 옮기는 게 낫다”고 말했다. 로저스 기자는 “이영표가 토트넘에서 주전 자리를 뺏긴 것은 기량이 못하기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 연합뉴스 | ||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토트넘 담당 기자인 데이비드 하이트너는 “선수의 이적을 예고하는 일은 부담스럽다”는 전제한 뒤 “이영표가 겨울에 토트넘을 떠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선 “이영표가 떠나지 않으면 잊혀지는 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라는 충격적인 발언까지 했다.
토트넘과 더불어 아스널 담당 기자를 함께 맡고 있는 하이트너 기자는 “토트넘의 마틴 욜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 그리고 직원들까지 이영표를 인간적으로 좋아한다. 그러나 출전 기회와는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축구 선수가 그라운드를 떠나 있으면 잊혀지고 사라지는 법이라며 현실을 냉정히 볼 것을 주문했다.
하이트너 기자는 첼시의 예를 들면서 “얼마나 좋은 선수들이 벤치에 머물고 있는 지를 잘 봐야 한다. 새로운 팀으로의 이적을 부담스러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기자들의 반응은 전체적으로 로저스나 하이트너 기자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제임스 더커 기자(더타임즈)는 “심봉다와 에코토가 다치길 바라지는 않겠지만 두 선수의 부상이 없다면 이영표의 시즌 후반도 별로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심봉다는 알려진 대로 지난 시즌 위건에서 뛰면서 프리미어리그 협회가 선정한 ‘베스트 11’에 오른쪽 윙백으로 이름을 올렸고 마틴 욜 감독이 무조건 영입하겠다고 공언한 선수였다. 에코토는 원래 이영표의 주 포지션인 왼쪽 윙백을 맡으면서 평균 이상의 활약으로 완전 주전을 굳힌 상태다.
더커 기자가 바라보는 이영표와 에코토의 기량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감독이 누구의 손을 들어 줬는지를 잘 보라고 반문한다. 더커 기자는 “심봉다가 이영표보다 크로스의 정확성이 뛰어나고 스피드에서도 우위에 서 있다. 그러나 에코토와의 비교는 애매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독이 계속 주전으로 기용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에코토를 올 시즌 토트넘의 베스트 11이라고 마음을 굳힌 욜 감독이 갑자기 자신의 계획을 바꿀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 마디로 이영표한테 마음이 떠난 감독 밑에 있지 말라는 얘기다.
이상 세 명의 영국 축구기자들의 예측은 국내 축구팬들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현실이기도 하다.
이영표는 몸 상태만 좋게 유지하면 언젠가 감독이 불러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조차 없는 처지가 됐다. 최고의 대우를 받는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유럽 프로축구는 그만큼 냉혹한 현실이 공존한다.
AS로마 이적 거부는 이영표에게 힘든 시간을 안겨줬다. 이적의 최종 결정 권한은 선수인 이영표가 쥐고 있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 이영표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해본다.
변현명 축구전문리포터 ddazz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