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한화이글스 | ||
새벽부터 아들을 만나기 위해 해마다 ‘연중 행사’를 벌이는 서재응의 가족들을 보면서 운동 선수의 가족들이야말로 선수의 ‘영원한 서포터즈’라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 루키’ 류현진 또한 ‘영원한 서포터즈’이자 형처럼 자상한 아버지 류재천 씨의 존재가 큰 힘이 된다. 야구의 ‘눈높이’ ‘키높이’를 제대로 성장시키기 위해 애쓴 류 씨의 노력들은 야구 선수를 둔 부모라면 ‘빨간펜’으로 밑줄 쫙 그어가면서 주의깊게 들어봐야 할 것이다.
현진이는 야구를 시작한 이후부터 야구를 취미 이상의 특기로 생각했다. 훈련이 힘들다고, 선배들이 못살게 군다고, 놀고 싶다고 해서 야구하기 싫다고 도망가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운동에 푹 빠져 있는 아들을 걱정스레 쳐다보는 나에게 “아빠 난 야구해서 평생 먹고 살 거니까 걱정마세요”라며 큰 소리를 칠 정도였다.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야구를 처음 시작하면서 국가대표가 되길 소원하거나 프로팀 입단을 꿈꾸는 일은 없다. 가장 기대를 부풀리는 목표 지점이 대학 진학이다. 그때까지 열심히 뛰어서 4년제 대학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면 고생해서 뒷바라지한 ‘최고의 선물’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시절 야구를 처음 접하며 부자간의 돈독한 사랑을 나누고 확인할 수 있었던 때에 비해 중학교 이후부터는 부모의 역할이 대폭 축소되었다. 학교 감독님이나 코치 선생이 현진이를 컨트롤했고 현진이 또한 내 품을 떠나 좀 더 안정되고 정리된 야구 수업을 받아갔다. 그러나 현진이를 학교에 ‘일임’한 난 한참 동안 헛헛한 심정이 되었다. 갑자기 소일거리가 없어진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실 현진이를 제대로 된 야구 선수로 성장시킨 데에는 나보다 아내의 몫이 훨씬 크다. 아내는 총무를 맡아서 선수들 뒷바라지하는 데 직접 뛰어들었고 빠듯한 살림을 알뜰히 쪼개 쓰려고 발품을 팔며 돌아다녔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며 현진이가 부족함 없이 운동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내 입장에선 항상 생활이 빠듯할 수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녔을까.
▲ 류현진의 경기를 응원하러 온 가족들. 맨 오른쪽이 형 현수 씨다. 아버지 류재천 씨는 운동을 뒷바라지하느라 장남에게는 그만큼 신경을 써주지 못해 늘 미안하다고 한다. | ||
중학교 1학년부터 주전으로 뛴 현진이 덕분에 우린 대접 받으면서 학부모들과의 유대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현진이를 앞에 내세운 적이 없었다. 오히려 더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면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원래 ‘잘 나가는 선수’한테는 이런저런 태클이 많은 법이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난 ‘류현진’이란 이름이 이상한 데서 소문과 스캔들을 양산하지 않도록 다른 학부모들과의 유대 관계를 돈독히 했다.
다양한 선수들만큼 그들의 부모들도 천태만상이다. 집안 일이며 생업을 모두 팽개치고 아들만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아들의 출전 여부에 목숨을 거는 일이 다반사다. 어떤 부모는 감독한테 ‘눈도장’이라도 찍으려고 운동장 출근을 마다하지 않는다. 만약 기울어지는 게임이라면 감독 입장에서 열성적인 학부모의 아들을 출전시킬 확률에 대비한 사전 작업이라고나 할까.
지난 번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현진이 형 현수는 동생과는 완전 딴판이다. 외모 식성 스타일 뭐 한 가지 닮은 게 없다. 현진이가 ‘꽃미남’과는 전혀 관계없는 ‘내츄럴함’(?)을 자랑한다면 현수는 중학교 때부터 KBS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연예계와 인연을 맺었던 ‘얼짱’이다. 당시 드라마 PD가 연기 학원을 다니며 정식으로 연기 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할 만큼 외모와 연기력 모두를 인정받을 정도였다.
우리 부부가 현진이에게 신경을 쏟는 사이 현수는 혼자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했다. 대학 입시를 앞둔 상태에서도 부모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결국 연기자와 관련있는 전공을 선택했고 현재 대학 재학 중이다. 돌이켜보면 똑같은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아니 장남이 대학을 앞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직 현진이의 야구에 정신을 쏟고 둘째 아들을 쫓아다니기에 바빴다. 그만큼 운동선수의 아들을 선수로 성장시킨다는 게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피겨 요정’ 김연아의 아버지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연아 때문에 가족들 모두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는 그 내용 말이다.
우리 가족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전국을 떠돌며 현진이의 경기를 뒤쫓는 모습에 정상적인 가족 생활이 그리울 때도 있다. 현재 우리 부부가 머물고 있는 곳도 아시안게임이 벌어지는 카타르 도하다. 이 또한 ‘정상’적인 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