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골든글러브 투수상을 받은 류현진.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카타르 도하에서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돌아온 류현진과 함께 덩달아 바빠진 사람이 있다. 바로 시상식장에서 열심히 꽃다발을 들고 다닌 아버지 류재천 씨다. 아들의 유명세 때문에 자신의 이름보다는 ‘류현진 아버지’라는 호칭에 더 익숙해진 류 씨의 뒷바라지 사연을 들어본다.
외국 전지훈련을 계획했다가 감독의 반대로 무산된 후부턴 학교 운동장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캐치볼을 하면서 피칭 감각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했고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불어난 체중을 빼려고 땀을 쏟아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자 군산에서 전지 훈련을 겸한 8도 고교 대항전이 열렸다. 동산고와 군산상고와의 경기에 현진이가 선발로 나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훈련장 스탠드에 야구 관계자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나와 아내는 일부러 프로팀 스카우트들로 보이는 사람들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들의 얘기를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1회에 긴장된 모습으로 마운드에 오른 현진이는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호투를 펼쳤다. 현진이의 투구를 지켜본 스카우트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와~ ‘짝배기’가 141(km)을 던지네!”라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 프로팀의 스카우트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들렸다. “이제 SK는 ‘대박’이네. 좋은 선수들은 ‘싹쓸이’하게 생겼어”라며 부러움을 나타냈고 SK의 스카우트는 동산고 감독에게 현진이가 너무 무리하지 않게 해달라는 이색 부탁까지 건넸다. 현진이가 마운드를 내려가자 그 많던 스카우트들이 스탠드에서 자취를 감추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스카우트들의 반응을 보면서 새삼 부상과 상처로 얼룩진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는 걸 느꼈다. 현진이가 수술과 재활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이전처럼 제대로 된 공을 던질 수 있는지의 여부였다. 현진이한테는 ‘걱정마라. 분명히 넌 할 수 있다’라고 용기를 줬지만 사실 그런 말을 하는 내 속마음은 자신감과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스카우트들이 감탄할 정도로 빼어난 구위를 선보이다보니 이전의 걱정이 한낱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고3 초에 대통령배 예선전이 벌어졌다. 그런데 첫 게임에서 지는 바람에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현진이의 재기를 제대로 알릴 기회조차 없어진 것이다. 프로야구 지명 문제로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후 청룡기대회가 열렸지만 그때쯤이면 이미 1차 지명이 끝나는 시기였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현진이가 청룡기대회에서 완봉과 완투를 거두며 고교 야구 마운드에 다시 섰다는 점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전화통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SK팀으로부터 ‘러브콜’이 올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컸다. 그런데 8개팀 중에서 SK가 가장 늦게 발표를 했다. 그런 가운데 밖에 나갔던 현진이가 전화를 했다. 풀 죽은 목소리로 어렵게 내뱉은 말이 “아빠, 나 안됐어. (이)재원이가 됐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순간 열이 팍 올랐다. 물론 이재원도 훌륭한 선수였다. 그러나 현진이 대신 재원이가 뽑혔다는 게 너무 섭섭했다. 어쩔 수 없는 속마음이었다. 그러면서도 현진이한테는 내색하기 어려웠다. “괜찮다. 2차(지명)도 있고, 정 안 되면 1년 꿇으면 되는 거잖아. 신경 쓰지 마라”하고 또 다시 위로의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사실 SK로부터 전화 한 통이 없어서 ‘이상하다’란 생각이 들었었다. 적어도 발표하기 전에 선수나 선수 부모와 접촉해서 협상을 하기 마련인데 SK가 미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팀이 롯데였다. 현진이를 2차 지명에서 1번으로 뽑을 수 있는 팀이었다. 또 다시 초조와 불안한 심정으로 발표를 기다렸다. 그러나 롯데마저도 현진이를 외면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 즈음에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도 그 소문이 나돌았고 여기저기서 전화를 걸어선 어찌된 영문인지를 물었다. 지금도 난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다. 짐작은 가지만 물증이 없기 때문에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피가 끓어오를 만큼 분노가 치민다. 소문의 주된 내용은 이랬다. 내가 깡패 출신이고 현진이는 술과 담배를 즐기는 품행이 좋지 못한 선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조폭 아빠와 망나니 아들’이었다. 그래서 프로팀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는 허무맹랑한 루머였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