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쓰는 별들의 탄생신화] 최홍만 ②

‘악당 선배’가 오기에 불 지폈다

	▲ 고교 시절 숙소에서 댄스를 선보이는 모습. ‘테크노 골리앗’의 끼는 이때부터 시작됐나 보다.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27)이 종합격투기 K-1과 3년 재계약했다. K-1 측은 최홍만이 2009년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K-1 경기에 출전하게 되며 기회가 닿는다면 미국 대회에도 참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항간의 80억 원설에 대해서 K-1 측에선 부인했다. 지금까지 선수의 계약금은 비공개가 원칙이고 다른 선수와의 형평성 문제로 분란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래도 80억 원설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최홍만의 재계약 소식이 알려지면서 제주의 최홍만 아버지 최한명 씨가 떠올랐다. 제주 한림읍에서 여름에 냉면 전문점을 운영하며 가게 위층에 살림집을 내 살고 있는 최 씨의 소박한 살림살이가 80억 원이란 엄청난 숫자와 함께 아이러니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젊은 시절부터 일을 놓지 않고 살았던 두 부부. 두 아들 뒷바라지에 손에 물 마를 새 없이 일을 했던 그들은 스타로 자리매김해 가는 아들 최홍만이 한없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아주 가끔은 점점 손 닿을 수 없는 곳에 아들이 가 있는 것 같아 헛헛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홍만이가 K-1과 재계약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축하 전화를 해왔다. 사람들의 관심은 재계약보다는 재계약금에 더 쏠려 있었다. 언론에서 80억 원 운운하는 바람에 졸지에 난 수십억 원대의 재산을 가진 부자 아빠가 돼 버렸다. 솔직히 난 홍만이가 얼마를 버는지, 얼마를 벌었는지 잘 모른다. 몸 다쳐 가며 버는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고 운동을 통해 홍만이가 행복을 느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홍만이는 사춘기다운 사춘기를 보내지 못했다. 갑자기 커 버린 체격으로 인해 어딜 가나 주목을 받았고 어딜 가나 웃음거리가 됐다. 어린시절에는 같이 목욕탕에 다니며 등도 밀어 주고 물장난도 치는 등 부자지간의 돈독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홍만이가 ‘돌연변이’로 성장한 이후에는 서로 가까이하기를 꺼려했다.

그러다보니 나보다 홍만이가 느끼는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만약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숨 쉬고 살기 힘들 만큼 홍만이는 평범치 못한 체격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지내야 했다. 씨름은 일반인과 다른 공기를 마시고 사는 홍만이에게 유일한 탈출구요, 놀이였다. 그래서 홍만이가 씨름에 갖는 애착이 집착으로 번질 만큼 대단한 의욕과 도전 정신이 있었다.

	▲ 농구 최장신 한기범, 최근 프라이드에 진출한 이태현과 찰칵.

제주도에서 부산 경원고 씨름부로 전학을 갔던 홍만이.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걸로 알고 있었던 난 그 해 겨울방학 때 홍만이를 만나러 부산에 갔다가 홍만이가 지내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안부 전화를 할 때마다 ‘너무 편히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우리의 불찰이었다. 기숙사는 설계만 돼 있을 뿐 공사조차 하지 않아 아예 흔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기숙사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홍만이는 어디서 숙식을 해결했을까. 홍만이가 주저 주저하다가 데려간 곳은 학교 강당이었다. 씨름부 선수들 중 타지에서 온 사람은 홍만이 혼자뿐이었다고 한다. 부산에 집이 있는 선수들은 훈련 끝나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마땅히 갈 곳이 없는 홍만이에게 제공된 숙소가 학교 강당이었던 것.

당시 홍만이가 한 얘기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아빠, 내가 자는 곳에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너무 시끄럽고 귀찮게 해서 잠을 잘 못 자겠어요.” 홍만이가 말한 그 ‘친구’들은 다름 아닌 바퀴벌레와 쥐들이었다. 홍만이는 덩치는 산만 해도 벌레만 보면 기겁을 했다. 바퀴벌레만 봐도 소리를 지르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애가 그 바퀴벌레들과 쥐들이 돌아다니는 곳에서 잠을 잤다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데려다가 제대로 된 운동 선수로 키워보겠다는 감독님 말만 믿고 아들을 떠나 보낸 뒤 숙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부모의 무성의가 자식을 강당에서 재우게 했다는 자책감으로 번져 가슴을 치게 만들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졸업 전에 기숙사가 신축돼서 강당 생활을 청산하고 1년간은 기숙사에서 편하게 생활했다는 사실이다.

눈에 확 띄는 체격에다 실력까지 남달랐던 홍만이는 고등학교 시절 학교 선배들로부터 많은 시달림을 당했다. 평소에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는 잘 꺼내지 않은 애가 하루는 집에 와서는 씩씩거리며 ‘악당’에 대해 처음으로 털어놨다. 3학년 선배 중에 유난히 홍만이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다. 합숙 때 잠을 자다가 홍만이가 코를 곯면 시끄럽다며 베개를 던져 구박할 정도로 인격적인 모독도 서슴지 않는 선배였다. ‘악당’의 양말과 속옷까지 빨아서 대령하며 정성스레 수발을 드는 후배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가차없이 기합을 준 그 사람에게 홍만이는 ‘악당’ 운운하며 이를 갈았다.

한번은 우리 부부가 씨름부 전원에게 식사를 대접할 일이 있었다. 부산에 내려가 선수들을 이끌고 고깃집에서 거하게 한 턱을 냈는데 그 자리에 말로만 듣던 ‘악당’도 함께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그러나 내색했다간 우리가 떠나면 홍만이가 맞아 죽을 것 같았다. 난 그 ‘악당’에게 고기를 더 갖다 주면서 “홍만이가 철이 없으니까 선배가 잘 좀 봐 주라”며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는 내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아마 자신이 한 짓 때문이리라.

정리=이영미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