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 당사에서 선거상황판에 당선된 후보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호남 제1당 세력 교체
4·13 총선에서 호남민심은 ‘전략적 선택’을 했다. 호남에서는 더민주 심판을 통해 차기 대선을 앞두고 야권에 강력한 경종을 울리고 수도권에서는 교차 투표를 통해 여소야대 정국을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호남 민심의 향배는 내부적으로는 ‘의원 교체’보다는 ‘야당 교체’에 방점을 찍었다.
국민의당은 광주 8석을 석권한 것은 물론 전남에서 8석, 전북에서 7석 등 호남에서 총 23석을 차지했다. 반면 더민주는 광주에서 전멸하고 전남 1석, 전북 2석에 그치는 등 말 그대로 참패했다. 이로써 야권의 심장부인 호남에서 압승을 거둔 국민의당은 원내 제3당으로 정국의 키를 잡게 됐으며 추후 야권 재편 과정에서도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년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모두 ‘정권교체’를 주요 의제로 내걸고 겨룬 경쟁에서 국민의당이 승리함에 따라 호남민들은 내년 정권교체의 주도세력이 국민의당이 돼야 한다는데 손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새누리당은 전남 순천과 전북 전주 을에서 교두보를 확보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비록 2석에 불과하지만 야당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순천에서 이정현 후보는 또다시 ‘이변 아닌 이변’을 연출했다. 이 당선자는 여당의원으로는 비례대표를 포함 3선 의원이라는 광주·전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치 이력을 쌓게 됐다. 이로써 향후 여당 내에서 더욱 탄탄한 입지를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정운천 후보가 여당 후보로 야당 텃밭인 전북에서 당선된 것은 1996년 당시 신한국당 강현욱 의원이 군산에서 당선된 이후 20년 만이다. 전주에서는 84년 임방현 의원의 당선 이후 무려 32년 만이다. 정 당선인은 2010년 전북도지사 선거와 19대 총선에 고배를 마신 뒤 ‘삼세판’ 도전 끝에 결국 승리하면서 고질적 지역주의를 타파할 선봉장, 여권의 차세대 지역 리더라는 입지 모두를 단숨에 거머쥐었다.
# 문재인 호남방문 역풍…정계 은퇴할까
호남에서 더민주가 참패함으로서 문재인 전 대표의 호남방문의 효과 여부와 거취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문 전 대표는 총선 막판 광주 등 호남을 두 차례 방문, 호남 민심의 지지를 자신의 대선 불출마 및 정계 은퇴와 연계시키면서 더민주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정치권에서는 문 전 대표에 대한 호남 민심의 ‘지지 기준’으로 더민주가 최소한 호남에서 12∼14석 정도는 확보해야 될 것으로 전망했었다.
하지만 호남지역 총선 결과는 더민주의 참패로 나타나면서 사실상 호남 민심이 문재인 전 대표를 불신임한 것으로 귀결됐다. 특히 호남 민심의 핵심인 광주에서 더민주 후보들이 전멸하면서 문 전 대표의 정치적 퇴로가 차단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 전 대표의 방문으로 예상됐던 호남지역 더민주 지지층 결집 현상도 국민의당 후보들이 상당한 격차로 승리하면서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지역 정치권의 평가다. 실제로 이용섭, 이형석, 우윤근, 신정훈, 백무현 후보 등 광주·전남지역 친문 성향 후보들은 별다른 힘을 못 쓰고 패배했다.
나아가 호남 민심이 문재인 전 대표가 상징하고 있는 더민주의 패권주의를 심판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선거 막판 이뤄진 문 전 대표의 호남 방문이 오히려 국민의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역풍’을 부른 것 아니냐는 분석마저 제기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문 전 대표가 선거 막판 광주 전남 지원 유세를 한 선거구에서 더민주 후보가 모두 낙선한 반면 더민주 후보 중 유일하게 지원 유세를 하지 않은 담양·장성·함평·영광의 이개호 후보는 당선돼 대조를 보였다. 이는 결국 반문 정서에도 문 전 대표가 선거 막판 광주 전남을 방문한 것이 역풍을 불러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남대 정치학과 오승룡 교수는 “선거 막판 문재인 전 대표의 두 차례에 걸친 광주·전남 방문은 역효과를 냈다“고 단정하며 ”결과적으로 문 전 대표에 대한 비호감 정서와 친노 패권주의적 정당운영에 대해 비판적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던 호남 유권자들에게 국민의당 지지로 돌아선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문 전 대표가 비록 수도권에서 선전했지만, 호남에서 참패해 호남 민심이 더는 문 전 대표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을 한 만큼 어떤 정치적 입장과 정치적 메시지를 호남인들에게 던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국회의원 선거 출마자 지원유세를 하는 모습.
# 지방권력 지형 재편 불가피
더민주가 참패하고 국민의당이 호남을 대표하는 새로운 정당으로 부상하면서 호남 정치 지형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2년 뒤 지방선거 역시 더민주와 국민의당 간 양자 대결로 치러질 경우 ‘지방 권력’을 놓고 치열한 한 판은 불보 듯하다.
무엇보다 지역 정치권 지형 변화가 예상된다. 국민의당이 광주 전체 8석을 독차지함으로써 윤장현 광주시장의 입지는 오히려 탄탄해졌다고 볼 수 있다. 비록 현재 더민주 당적을 보유하고 있지만 자타공인 ‘안철수의 사람’인 윤 시장으로선 국민의당의 광주 석권으로 든든한 우군을 확보한 형세다. 특히 선거 막판 삼성전자 광주 유치를 둘러싼 더민주와 국민의당 간에 논란과정에서 사실상 ‘국민의당’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명분까지 얻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면에 이낙연 전남지사의 입지는 대폭 좁아진 모양새다. 측근이자 자신의 지역구를 물려준 이개호 담양·장성·함평·영광 후보가 유일하게 당선됐을 뿐 소속 당인 더민주가 몰락했기 때문이다. 우선 당장 이번 선거과정에서 전남도의회가 전체 의원 57명 중 더민주 30명, 국민의당 20명으로 재편되면서 도의회의 혹독한(?) 견제에 시달릴 전망이다. 나아가 차기 전남도지사 선거에서 4선의 주승룡 의원 등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한 상황이다.
전북 전주에선 새누리당 정운천, 국민의당 정동영 김광수 후보가 분할함에 따라 팽팽한 정치적 균형과 함께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전주지역에서 특정 정당 독주 체제가 사실상 막을 내리면서 더민주 소속 김승수 전주시장의 정치적 고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북 도내 전체적으로도 야권 국회 의석 변화에 따라 2년 뒤 지방선거를 앞둔 자치단체장들의 이합집산도 예상된다. 지방권력의 정점에 있는 송하진 전북도지사의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현재 14개 기초단체장을 더민주 7명, 무소속 7명으로 절반씩 나눠 갖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국민의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지자체장이 나올 경우 송하진 지사의 입지는 한층 좁아질 수밖에 없다.
총선 결과가 국민의당 압승으로 나타나면서 무소속 단체장들의 심적 변화도 예상된다. 대부분 무소속 단체장들이 더불어민주당 공천에 반발해 탈당한 정치인들이라는 점에서 당적을 갖게 된다면 국민의당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광주전남 정치권의 사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들 가운데 국민의당으로 당적을 바꾸는 이들이 속출하면서 호남 지방권력 지형은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분점’할 것이라는 게 지역정가의 대체적인 견해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