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0일 일본으로 출국한 요미우리 ‘4번 타자’ 이승엽. 혹독한 식이요법 등을 거쳐 최고의 컨디션을 만들었다는 그는 자신감도 한층 업그레이드됐다고 한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출국에 앞서 짤막한 스탠딩 인터뷰를 마치고 매니지먼트 관계자들과 잠시 공항 내 카페에 들렀던 이승엽을 만나 혹독한 훈련 속에서 싸우는 온갖 유혹들에 대한 얘기와 어머니를 편안한 곳으로 보내며 깨닫게 된 인간 관계의 소중함 등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요미우리와의 궁합
이승엽을 일본 현지에서 취재한 기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요미우리 구단에서 이승엽을 대하는 태도가 장난이 아니다”라는 내용이다. 그만큼 성적이 좋은 요미우리 4번 타자를 위한 구단의 배려가 한국의 그것과는 격이 다르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이승엽은 “성적이 좋으니까 저한테 잘해주는 거죠. 만약 성적이 좋지 않으면 그런 대접 못 받을 겁니다”라고 풀어냈다. 이승엽은 일본 사람들의 특성을 정확히 꿰고 있었다. 유난히 한국 선수에 대한 견제와 질시가 심한 일본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성적뿐이라는 진리를 말이다.
“요미우리가 편하고 좋은 건 사실이에요. 왜 이상하게 궁합이 맞는 팀 있잖아요. 요미우리가 그래요. 그래서인지 이전과 달리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성적이 나쁘면 모든 게 ‘꽝’이죠. 한국에선 (성적이 좋을 때까지)기다려 주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거든요. 왜냐구요? 제가 용병이니까요.”
어머니 장례식 그후
이승엽에게 어머니는 회한의 존재다. 2000년 1월 초 신혼여행 중에 어머니의 수술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했지만 그후로 어머니는 불편한 몸이 되고 말았다. 어렵게 일어났지만 말하는 게 쉽지 않았고 아들 얼굴이 스포츠뉴스를 통해 TV로 방영돼도 좀처럼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후 오랫동안 병석에만 있다가 결국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는데 임종을 지킨 이승엽은 어머니에 대한 복받치는 감정 때문에 겉으로는 단단한 척했지만 속에선 훈련을 하면서도 눈물을 흘린 시간들이 많았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컸지만 장례식장을 찾아 주신 많은 분들한테 슬픔을 뛰어 넘는 감동을 받았어요. 진짜 너무 많이 찾아주셨거든요. 미처 연락도 못했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전국에서 저랑 인연이 있는 분들은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으셨죠. 깜짝 놀랐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제가 평소에 사람들에게 많이 못하고 살았구나 하는 자책도 했고. 그후 일일이 인사를 드리지 못했는데 이 자리를 통해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빨리 훈련을 시작했다고 한다. 차고 넘치도록 받은 사랑을 보답하는 길은 야구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편안한 곳으로 먼저 가신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좋은 성적을 통해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고 결심했다.
▲ 연합뉴스 | ||
이승엽의 몸 상태는 최고점에 이르렀다. 오죽했으면 개인 트레이너였던 오창훈 관장(세진 헬스)이 ‘오버페이스하지 말라’고 걱정을 했을까. 이를 악 물고 훈련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체중 조절을 위해 계란 흰자를 주식으로 삼아 먹으면서 혹독한 식이요법을 병행했다.
그래서 중간 중간 쉬고 싶은 유혹이 없었는지를 물었다. 절제와 극기로 대변되는 지난 훈련들이 이승엽의 자신감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킨 건 사실이지만 그도 인간이기에 가끔은 포기하고 멈추고 싶은 순간들이 있을 것 같았다.
“왜 아니겠어요. 쉬고 싶을 때가 많았죠. 계획하고 목표한 것들을 뒤돌아보지 않고 이뤄가기란 정말 어려워요. 하지만 앞으로 야구 인생 10년도 안 남았잖아요. 야구하는 동안은 열심히 하고 그만둔 다음에 쉬어야죠. 하하”
메이저리그 향한 꿈
이승엽의 팬들은 요미우리가 빨리 우승하길 바란다(?!). 그래야 이승엽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승엽이 요미우리와 재계약하면서 ‘요미우리를 우승시킨 다음에 메이저리그를 생각하겠다’고 말한 부분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미안한 마음으로’ 또 다시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이승엽의 생각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는 가게 되겠죠. 야구 그만둘 때까지 그 꿈은 버리지 않을 겁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메이저리그에는 꼭 가고 싶어요. 일본 선수도 서른여섯 살에 가서 성공한 케이스도 있구요. 그러나 지금은 미국 얘기는 뒤로 했음 좋겠어요. 저에게 닥친 올시즌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서른둘…체력과 나이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두 살인 이승엽. 아직까지 서른 살이 넘었다는 ‘체감 온도’조차 못 느끼고 있지만 지난해 WBC 대회 출전으로 시즌을 일찍 시작하는 바람에 8월에는 서 있기 조차 힘든 시간들도 경험했다고 한다.
이승엽은 “지바(롯데)에선 벤치에 있는 시간이 많아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었는데 지난해에는 매일 게임에 나가다 보니까 체력적인 부담을 느꼈다”면서 “그렇다고 벤치에 앉아 있는 걸 희망하는 건 절대 아니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이승엽은 마지막으로 대구에서 혼자 지내시는 아버지 이춘광 씨에 대한 걱정도 함께 담아냈다.
“훈련한다는 핑계로 아버지랑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어요.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대화는 자주 나누지 못했어도 그 마음은 읽을 수 있어요. 야구 잘하는 모습 보여드릴 테니까 아버지는 술도 좀 줄이시고 더욱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마저 아프시면 너무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요.”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