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록키발보아>의 설정을 뛰어넘는 ‘세기의 신·구 황제 대결’이 대한민국 서울에서 펼쳐질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타이거 우즈와 세계 최고의 스포츠스타를 겨루는 테니스황제 로저 페더러(26·스위스)와 왕년의 테니스황제 피트 샘프라스(36·미국)가 일전을 펼치는 것이다.
<록키발보아>에서 화제의 대결은 한 방송사의 TV프로그램이 옛 챔피언 록키와 현 챔피언 매이슨 딕슨의 가상 대결을 방영하면서 시작됐다.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연출된 경기는 상상 외의 큰 인기를 얻었고, 이것이 실제 경기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전세계 테니스팬의 이목이 집중될 페더러-샘프라스 대결은 ‘현대카드 슈퍼매치 시리즈’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현대카드 슈퍼매치는 2005년 9월 ‘테니스 요정’ 마리아 샤라포바 VS ‘흑진주’ 비너스 윌리엄스의 대결로 스타트를 끊었다. 이어 2006년 9월 ‘한국의 은반요정’ 김연아, 토리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예브게니 플루셴코 등 세계 정상급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을 서울로 모아 두 번째 슈퍼매치를 선보였다. 최고의 화제를 모은 것은 슈퍼매치 3탄. 지난해 11월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1·2위인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의 맞대결로 세계적인 화제를 뿌렸다.
현대카드는 ‘슈퍼매치 시리즈’로 마케팅 대박을 터뜨렸다. 입장권이 동이 난 것은 물론이고 미디어의 폭발적인 관심이 이어지면서 약 300억 원(자체 분석)의 광고 효과를 거뒀다. 현대카드의 시장 점유율도 두 자릿수를 넘기며 눈부신 신장세를 기록했다. 현대카드는 아예 자사 TV광고에 ‘슈퍼매치’를 넣었고 슈퍼매치 시리즈를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팬들도 ‘다음 번 슈퍼매치는 어떤 것일까’ 궁금해 할 정도가 됐다.
2007년 2~3차례의 슈퍼매치를 기획하면서 현대카드와 마케팅 대행사인 세마스포츠는 ‘페더러 카드’를 한 번 더 사용하기로 했다. 페더러가 2007년에 접어들면서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에서 무실세트 완벽 우승, 역대 최장기간 세계랭킹 1위 기록 등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세계적인 화제를 뿌렸기 때문이다.
고민은 마땅한 상대가 없다는 것. 고민을 하던 현대카드 측은 2003년 은퇴한 ‘전 테니스황제’ 샘프라스가 2007년 5월 챔피언스시리즈(30세 이상 선수가 출전하는 시니어투어)를 통해 컴백한다는 지난 1월의 외신 보도에 주목했다.
은퇴했다고는 하지만 90년대 최강자였던 샘프라스는 아직 30대 중반으로 체력과 기술에서 큰 문제가 없다. 한 번에 많은 경기를 치러야 하는 정규 투어는 벅차겠지만 친선 경기 형태의 ‘원매치’로는 페더러와 멋진 승부를 펼칠 수 있다는 전문가의 견해가 뒷받침됐다.
샘프라스는 역대 메이저대회 최다 우승 기록(14회)을 보유하고 있다. 페더러도 10회로 아직 샘프라스에게는 뒤진다. 페더러가 결점이 없는 완벽한 선수라면 샘프라스는 ‘피스톨 피트’라 불릴 정도인 시속 200㎞에 육박하는 강서비스가 주무기다.
그렇다 하더라도 테니스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페더러의 절대 우세를 점치는 사람이 더 많다. 페더러에게 핸디캡을 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샘프라스의 자존심을 고려하고 승부보다는 역사적인 맞대결에 의미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정상적인 맞대결로 기획되고 있다.
실제로 샘프라스는 지난 1월 31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전성기 때 페더러와 대결했다면 아마도 이겼을 것”이라고 라이벌 의식을 표출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세계 테니스계에서는 전성기의 샘프라스와 현재 페더러 둘 중 누가 더 위대한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마치 영화 <록키발보아>처럼 말이다.
호주 출신으로 1960년대 세계 남자 테니스를 평정했던 빅스타 로드 레이버(69)는 “페더러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라고 극찬했고, ‘코트의 악동’ 존 맥켄로도 페더러 대세론에 동참했다. 반면 앤드리 아가시는 “내가 최고의 경기를 펼치는 날에는 페더러를 이길 것”이라며 은근히 샘프라스 편을 들었다. 전성기 때를 비교해도 페더러 우세론이 강한 만큼 당장의 맞대결은 페더러가 무조건 이길 확률이 높다. 샘프라스와 페더러는 2001년 윔블던 16강에서 딱 한번 맞붙어 신흥강호 페더러가 하향세의 샘프라스를 접전 끝에 3-2로 이긴 바 있다.
세마스포츠의 이성환 대표는 “지난 해 첫 방한 이후 페더러는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11월 샘프라스와의 맞대결 참가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샘프라스도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두 선수 모두 11월까지 투어 일정을 소화하는 탓에 부상 등의 변수가 있지만 워낙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만큼 꼭 성사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페더러-나달의 맞대결을 능가하는, 세계 테니스사의 기념비적인 경기가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릴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이 쏠리게 됐다. 영화 <록키발보아>에서는 구황제가 감동적인 선전을 펼쳤지만 신황제에게 1-2로 판정패한다.
유병철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