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리너스에서만 8년. 그는 이미 구단에서 매리너스맨으로 통한다. 연합뉴스 | ||
애리조나주 피오리아의 시애틀 매리너스 캠프에서 만난 백차승은 두 가지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우선은 투수로서 상당히 안정되고 편안한 모습으로 마운드를 운영하는 모습이 좋았다. 작년 시즌 막판에 이미 빅리그 선발 투수로서의 능력을 과시한 바 있는 그는 양키스와 레드삭스전을 포함해 6게임에서 4승1패 평균자책점 3.67을 기록했다.
그러나 매리너스는 지난 스토브리그에서 미겔 바티스타와 제프 위버 등 노장 선발 투수들을 계속 영입했다. 바바시 단장과 하그로브 감독은 올 시즌이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노장들 영입에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올 시즌도 초반부터 매리너스가 성적을 내지 못하면 감독과 단장의 자리 보존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 오히려 그런 변화가 온다면 백차승에게는 더욱 큰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
백차승을 방문했던 날 그는 콜로라도 로키스전에 두 번째 투수로 나서 3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투구수는 33개로 1이닝 당 11개에 불과했고 그중 25개가 스트라이크였을 정도로 제구력이 빼어났다.
일단 제구력이 되는 데다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질을 모두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능력이 당장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듯 보였다. 특히 과거에 비해 왼손 타자들을 상대하는 능력이 월등히 좋아졌다. 백차승은 “왼손 타자들을 상대로 인코너와 아웃코너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슬라이더의 개발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백차승은 지난 16일 시카고 컵스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3이닝 7안타 6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며 시범경기 2패째(방어율 11.25)를 떠안으며 불안한 면을 노출했다. 비록 시범경기였지만 심한 기복을 보였다는 점이 선발 진입에 변수로 작용할 듯하다.
야구 외적으로도 백차승은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마이너리그부터 시작해 이미 매리너스 구단에서만 8년을 보낸 점 때문에 팀의 환경이나 분위기 등 모든 점에 상당히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날 등판을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아이싱을 한 채로 인터뷰를 하는데 오가는 동료들이 호투를 칭찬하고 격려하자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손바닥을 마주치는 등의 모습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 캠프에서 만난 백차승. 사진제공=minkiza.com | ||
빅리그 구단들도 어려서부터 소속 마이너를 거치면서 성장한 선수들에게는 각별함을 보인다. 백차승 역시 그 점에서는 팀에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그렇지만 백차승은 프로야구의 비지니스적인 면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어떤 선수도 트레이드될 수 있는 곳이 바로 메이저리그다. 지난 2005년에 부진한 시즌을 보내자 매리너스는 냉정하게 백차승을 내쳤다가 다시 계약을 맺은 적도 있다.
시범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는 각오 뒤에는 매리너스 투수진의 한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목표가 물론 우선이지만 스카우트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심어주겠다는 의도도 숨어 있다.
아직 마이너리그 옵션이 한 번 남은 백차승은 구단이 결정을 내리면 또 마이너로 가야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시범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다른 팀들의 레이더망에 걸릴 것이고, 그럴 경우 트레이드 요청이 오지 않겠냐는 것.
시애틀이 스프링 캠프를 벌이는 피오리아의 매리너스 캠프는 백차승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지난 2001년 봄 백차승은 미국에 오기 전부터 속을 썩이던 오른쪽 팔꿈치의 인대가 완전히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토미존 수술’로 널리 알려진 오른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백차승은 피오리아의 재활군 캠프에서 1년 반 이상을 홀로 보냈다. 당시 백차승은 아는 사람도 없는 소도시에서 오로지 재활 운동과 훈련 후에는 집에서 홀로 TV를 보거나 천장만 쳐다보며 그 많은 시간들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선지 백차승은 미국에 와서 많은 시간을 보낸 시애틀 못지않게 피오리아가 제2의 고향 같다고 한다. 야구 이야기를 하고 어려웠던 마이너리그 시절을 털어놓을 때도 비교적 담담하던 백차승은 1998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와 이어진 무기한 자격 정지, 미국 입국이 되지 않아 겪었던 어려움, 마이너리그에서 캐나다로 경기를 갈 때마다 비자 문제로 국경에서 몇 시간씩 홀로 조사를 받던 일, 그리고 국적 포기 등의 이야기를 할 때는 표정이 아주 어두워지곤 했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미국 시민권 획득은 그가 선수생활을 계속하는 한 그에게 화살로 돌아오리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백차승은 이젠 모든 것을 접어두고 싶다고 했다. 오직 야구만이 자신의 길임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반드시 빅리그의 선발 투수로 자리를 잡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또 다졌다. 올시즌 백차승이 빅리그에서 어떻게 정착해 나가는지 기대를 해도 될 것 같다.
민훈기 메이저리그 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