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구단의 트레이드 요청을 받고 있는 콜로라도의 김병현이 지난 16일(현지시각) 샌프란시스코 와의 시범 경기에 등판해 볼을 던지고 있다. 아직은 제구력이 불안정하지만 몸상태는 매우 좋다고. 로이터/뉴시스 | ||
콜로라도 로키스의 잠수함 투수 김병현(28)은 현재 5선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팀 내부에서부터 트레이드 소문이 끊이지 않더니 이제는 메이저리그의 4개 팀들이 그를 데려가겠다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당초 관심을 보였던 오클랜드 에이스와 LA 다저스 외에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플로리다 말린스도 김병현을 원하고 있다.
스프링 캠프 취재 중에 애리조나주 투산을 찾아 김병현을 만났을 당시에도 이미 소문은 파다했고,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병현은 참으로 태연했다. 그는 “캠프 초반에 단장, 감독, 투수 코치와 만나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전제하면서도 “야구는 비즈니스 아닌가. (트레이드 소문을)그 사람들한테 따질 수도 없는 거고 신경 쓰지 않는다. 콜로라도에 뼈를 묻을 것도 아니고 내 자신만 준비가 돼 있으면 어디 가서 하나 마찬가지다”라며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답을 내놓았다. 어느 선수보다도 편하고 재미나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소박함과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준 김병현과의 인터뷰 후일담을 소개한다.
김병현만큼 경기 내적으로, 또 경기 외적으로 많은 사건(시련)을 겪은 선수도 찾아보기 힘들다. 어린 나이에 야구의 최고봉이라는 월드시리즈에 마무리로 나서는 쾌거를 이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거푸 홈런을 허용하며 최악의 고통을 겪었다. 국내에서 훈련 중에 사진 기자와 다툼도 있었고, 보스턴 시절 팬들에게 손가락질 욕을 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김병현을 아끼는 팬들도 많지만 반면에 오해도 많이 샀고 요즘 인터넷 용어로 안티도 만만치 않은 선수다.
그러나 김병현은 야구에 모든 것을 던진 청년임이 분명하다. 그의 생활은 모든 것이 야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메이저리그의 스프링캠프를 취재하며 만난 코리언 빅리거들에게 ‘당장 한 달 휴가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똑같이 물어본 적이 있다. 그중 김병현의 대답이 제일 걸작이었다. “야구를 그만둔다면 모를까 야구를 하는 중이라면 편하게 못 놀 것 같다. 그냥 집에서 쉬면서 운동이나 하겠다”는 것.
김병현은 그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연습 벌레로 통한다. 서재응, 김선우 모두 ‘운동에 미친 녀석’이라 말할 만큼 훈련과 개인 운동을 열심히 한다. 애리조나 시절에는 집에 운동 기구들을 들여놓고 웨이트트레이닝을 했을 정도. 운동 중에 방문객이 찾아오면 목표로 삼은 운동량을 다 마친 뒤에야 방문객과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렇지만 연습벌레라는 말에 대해 정작 본인은 전혀 아니라고 부인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불안하니까 하는 것”이란다.
김병현은 여전히 홀로 조용히 지내기를 즐기는 분위기다. 취재 갔던 날이 마침 시범 경기 선발 등판일이었는데 경기 전 선수들이 모두 몸을 풀고 있는데 유독 김병현이 보이지 않았다. 트레이너에게 물어보니 클럽하우스에서 자고 있다고 했다.
텍사스 레인저스 취재 시절 벅 쇼월터 감독은 자신이 애리조나 시절 데리고 있던 김병현이 화제에 오르면 ‘잠’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잠을 잘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며 몇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감탄사를 연발했었다.
기자들을 기피하고 인터뷰를 꺼리는 걸로 유명한 김병현은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대답이 ‘거침없는 하이킥’이다. 무슨 질문에도 주저함이 없다. 야구 생애가 끝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김병현은 “어려서는 정말로 만화방이나 비디오방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야구 생각만 해서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만화와 영화를 대단히 좋아한다. 비디오 게임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잘한다.
현지 기자들도 김병현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덴버 포스트>의 트로이 렝크 기자는 “BK는 유머 감각도 있고, 아주 솔직한 선수다. 가끔 영어 때문에 조심스러워하는 면은 보이지만 인터뷰도 항상 잘 하고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한 기자는 김병현을 가리켜 ‘loner’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굳이 풀자면 ‘고독한 사람’ 정도인데 혼자 있기를 즐기는 선수쯤으로 받아들여진다. 작년에 김선우가 온 이후부터 훨씬 밝아지고 동료들과도 많이 어울린다는 해석도 덧붙였다.
김병현은 외부 환경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스타일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그 외의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 한다.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서 무엇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신경 써서 더 대접을 받고 싶은 생각도 없다. 본인도 “야구가 단체 운동 중에는 그나마 개인적인 면이 강한 것이 다행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어쩌면 김병현의 그런 성향이 트레이드 소문을 몰고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팀 분위기를 해치거나 방해가 되는 수준이 전혀 아니다. 다만 감독이나 코치들이 컨트롤하기 쉽지 않은 선수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워낙 과묵하고 아직 언어 소통이 완전치 않은 가운데 친근감 있는 성격이 아니다보니 코칭스태프가 힘겨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로키스가 김병현을 트레이드한다면 그건 큰 실수다.
올해 연봉이 250만 달러인데 그 돈을 주고 10승 투수를 구한다는 꿈은 버려야 한다. 물론 김병현이 시범 경기에서 들쑥날쑥 아직 안정된 경기를 보이진 못하고 있지만 이는 구위 문제가 아니라 제구력 문제다. 운동법을 바꾸면서 아직 밸런스를 확실히 찾지 못했을 뿐이다. 체력적으로 몸 상태는 확실히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현의 올시즌 소원은 부상 없이 33번 선발 등판하는 것. 그렇게만 된다면 10승은 문제도 아니다. 꼭 김병현이 아니더라도 그 정도의 구위를 지니고 한 시즌 30번 이상 등판하면 최악의 불운이 아니라면 10승을 거둘 수 있다.
사실 ‘투수들의 무덤’이라는 쿠어스필드를 홈구장으로 쓰는 로키스를 떠나는 것이 그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선발, 구원, 마무리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지닌 김병현이 개막전에 어떤 유니폼을 입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어떤 팀이든 그를 얻으면 절대 손해는 안 볼 것이다.
민훈기 메이저리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