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여자프로농구 대회에서 우리은행 선수로 활약했던 김계령 선수의 모습(가운데). 연합뉴스 | ||
■ 돈은 벌 수 없다
연봉 3만~4만 달러에 계약기간 5년(연봉 협상은 매년). 김계령의 계약 조건이다. 연봉이 정확히 표기되지 않은 것은 아직 신인 최저 연봉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2006년을 기준으로 3만 1800달러). 아무리 아파트와 자동차가 지원된다고 해도 나머지는 모두 자비로 충당해야 하는 미국 상황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다. 알뜰하게 살아도 1000만 원 정도 벌고, 좀 넉넉히 쓰면 이븐포인트이거나 오히려 마이너스일 수 있다.
같은 NBA라는 이니셜이 들어갔다고 해서 WNBA를 미국남자프로농구(NBA)와 흡사한 것으로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NBA는 신인최저연봉이 약 40만 달러(4억 원)에 달한다.
짜디 짠 WNBA연봉은 신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 WNBA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약 5만 달러다. 450만 달러의 NBA에 비교하면 무려 90배나 차이가 난다. 5만 달러는 한화로 환산했을 경우 약 5000만 원으로 한국의 중산층 연봉이고 한국보다 일인당 소득이 높은 미국에서는 일반 직장인들의 평균치보다 적은 편이다. 그래서 비시즌에는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는 WNBA선수들도 다수 있다.
97년 출범한 WNBA의 연봉이 한국보다 못한 정도이다 보니 WNBA선수협의회는 2003년 처우와 관련, 사무국과 심각한 대립을 벌이며 리그 중단 위기까지 가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그래도 WNBA의 박봉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리그 정상급 선수들은 비시즌인 겨울에 한국 등 세계 각국으로 나가 ‘과외’로 돈벌이에 열중하고 있다.
■ 한국을 떠난 게 아니다
김계령은 한국에서 연봉 1억 6000만 원을 받았다. 여자프로농구 선수 중 랭킹 3위에 해당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1억 6000만 원을 버리고 5분의 1에 불과한 수입을 택할 리 없다. 아무리 미국 무대가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최고의 선수들과 뛰고 싶은 욕망이 강하다 해도 말이다.
미국에 진출한 김계령은 한국의 기존 연봉을 고스란히 받는다. 연봉만 받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국내 프로리그 일정도 소화한다. WNBA의 비시즌 동안 열리는 2008겨울리그는 물론이고, 8월 중순 열리는 2007여름리그도 1라운드만 결장하지 나머지는 모두 뛸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해서 김계령은 한국을 떠나 미국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활약하는 선수가 된 것이다. 김계령은 국내 리그에서 계속 팬들을 만날 수 있다.
■ 실력 발휘 미지수
2003년 정선민은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한 시즌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평균 출장시간 7.25분). 국제대회에서 검증된 선수였지만 파워포워드에서 스몰포워드로의 포지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 WNBA 경험 덕분에 기량이 크게 늘었다는 평가도 받지 못하고 있다.
김계령은 어떨까. 신장은 정선민보다 5cm가 크지만 데이터 등 객관적인 기량 면에서 낫다고 할 수 없다. 자세한 상황을 점검하면 김계령의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다.
WNBA 서부 지구 소속의 피닉스 머큐리는 지난해 플레이오프(상위 4개팀)의 문턱에서 탈락했다. 우승팀인 새크라멘토, 레슬리의 LA, 시애틀, 휴스턴에 밀려 5위에 그쳤다. 그나마도 시즌 초반 부진하다가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호주를 우승으로 이끈 페니 테일러가 중반에 합류하면서 성적이 급상승한 것이다. 문제는 피닉스가 곧 실시될 2007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다는 점. 오하이오대학의 제시카 데이븐포트 등 좋은 센터를 확보할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김계령의 입지는 넓지가 않다.
출전 시간이 확보돼야 박봉에 고생하더라도 선진 농구를 배우는 보람이 있다.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김계령이 실력은 늘지 않고 벤치만 지키다 돌아오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인 것이다.
■ 또 누가?
호주 출신으로 WNBA를 주름잡았던 삼성생명의 용병 로렌 잭슨(26)은 WKBL 올스타전 MVP에 선정된 후 “한국 선수 가운데 5~6명 정도는 WNBA에서 뛸 수 있을 것이다. 변연하(삼성생명)와 정선민이 통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3점 슈터 변연하와 WNBA를 이미 경험한 정선민은 실체를 잘 알기 때문에 관심이 없다. 둘 외에 전주원 김영옥 박정은 등도 나이가 많고, 가정을 갖고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결국 ‘여자 방성윤’으로 불리는 신세계의 김정은과 신한은행의 하은주 정도가 WNBA를 바라보고 있다.
신세계의 정인교 감독은 “유망주들의 WNBA 진출은 한국여자농구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환상은 버려야 한다. 연봉도 적고 또 적응 과정에서 부상과 경기력 저하 등 부작용이 예상된다.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로렌 잭슨과 타미카 캐칭 등 ‘WNBA 10년팀’에 포함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돈벌이’를 위해 한국에서 뛰고 있는 상황에서 WNBA로 가는 것은 야구 농구 축구에서 빅리그로 가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어린 시절 미국에서 산 경험이 있는 김계령은 샌디라는 영어 이름을 가지고 있고 영어에도 능통하다. 한국과 미국의 이상적인 여자농구 교류라는 차원에서라도 지나친 의미 부여에서 벗어난 첫 성공 케이스를 만들어야 한다.
유병철 객원기자 einer6623@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