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지인진이 WBC 페더급 타이틀매치에서 로페스를 꺾고 세계 챔피언에 올랐던 경기 장면. 그는 이 경기 대전료로 고작 1만 달러를 받았을 뿐이다. 연합뉴스 | ||
“나는 모른다. (언론과) 전화 통화도 안 했다. 뭐 원래 언론은 프로모터 얘기대로 쓰지 않는가. 박탈은 프로모터쪽 얘기다. 지금 나한테는 박탈이 문제가 아니라 복싱을 계속 하느냐 안 하느냐가 최대 고민거리다.”
지인진은 ‘박탈설’에 대해 이렇게 입을 열었다. 실제로 박탈 위기를 보도한 기사에는 지인진의 멘트가 없었다. 프로모터 이거성 씨(PS프로모션)를 인용, 지인진이 지난 2006년 12월 타이틀을 되찾으면서 6개월 이내에 세계 1위 오스카 라리오스(멕시코)와 지명방어전을 치러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받았는데 현재 지인진의 손 부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함께 WBC 규정에 따라 챔피언이 특별한 이유 없이 지명방어전을 치르지 않을 경우 타이틀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지인진은 모두 프로모터 측의 얘기라고 설명했다.
“손에 부상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운동을 못할 정도는 아니다. 박탈 운운도 너무 일방적이다. 격투기의 대표격인 프로복싱에서 부상으로 인한 경기 연기는 수도 없이 많다. 이미 WBC는 라리오스와 호르헤 리나레스(베네수엘라)의 페더급 잠정 타이틀매치를 5월 26일 치른다고 발표한 상태다. 진단서만 보내주면 챔피언 벨트 유지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확인 결과 라리오스-리나레스전은 국내에서 지인진의 박탈설이 제기되기 이전에 외국에서는 이미 결정돼 있었다. 둘의 승자가 지인진과 맞붙는다는 설명도 나와 있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현재 지인진이 프로모터를 통해 WBC 측에 진단서 등 관계 서류를 제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인진 스스로 박탈이 아닌 반납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지인진은 현재 심각히 고민 중이다. 진단서를 제출한 후 나중에 라리오스-리나레스의 승자와 타이틀매치를 벌이는 방안과 끝까지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는 대신 반납의사를 밝히고 은퇴하는 것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반면 프로모터 측은 행정 처리가 제때 이뤄지지 않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그렇다면 왜 지인진은 복서의 꿈이자, 스스로 서른 살이 넘어 어렵게 획득한 세계챔피언의 자리를 반납하려고 하는가.
PS프로모션 측의 관계자는 “방송사가 TV 생중계를 외면할 정도로 국내 복싱 시장이 최악으로 침체돼 있다. 개런티 문제와 관련해 챔피언(지인진)과 이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지인진은 이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도 공개했다. 지난해 12월 세계타이틀매치에서 자신이 받은 개런티가 한국 돈으로 1000만 원도 안 되는 1만 달러였다고 밝힌 것이다. 2006년 1월 타이틀을 잃은 후 딱 한 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프로 선수인 지인진의 소득은 연봉 1000만 원 미만의 극빈층이나 다름없었다.
‘봉천동 록키’로 불리는 지인진은 지난해까지 서울 봉천동의 방 2개짜리 전셋집에서 살았다. 교통 수단은 스쿠터였다. 그동안 맞벌이로 어렵게 모은 돈으로 올 초 경기도 화성의 아파트로 이사를 해 마침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이사한 지 3개월이 돼가는데 아파트값이 4000만 원 정도 올랐다. 복싱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 부동산을 통한 수익이 훨씬 낫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운동을 하겠는가.” 국내 유일의 세계챔피언은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현재 지인진은 프로모션의 ‘확실한’ 답변이 없을 경우, 타이틀을 반납하고 복싱에서 은퇴한다고 밝혔다. 또 은퇴할 경우 이종격투기 K-1에 진출하는 것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절친한 선배인 최용수(전 WBA 슈퍼페더급 챔피언)의 K-1 생활을 소상히 알고 있는 지인진은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이 K-1의 신인급 선수보다도 수입이 적다. 조건이 맞으면 과감히 K-1무대에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현역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이 K-1 파이터로 변신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통산 31승(18KO)3패1무의 지인진은 테크닉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량을 보유하고 있다. K-1 무대에서 2전2승을 기록 중인 최용수는 “현역시절 지인진과 많은 스파링을 했다. 체중은 나보다 적지만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맞는 편이었다. K-1 무대에서도 잘 적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K-1의 한국흥행권을 갖고 있는 양명규 T엔터테인먼트 본부장도 지인진의 영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양 본부장은 “올해 K-1의 월드그랑프리 개막전이 한국에서 열리는 등 K-1에서 한국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선수가 필요한 만큼 지인진의 영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유병철 객원기자 einer6623@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