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12일 KTF와 LG의 경기에서 LG팀 소속 선수 퍼비스 파스코가 심판에게 폭행을 가하는 모습. 그는 이 사건으로 한국농구연맹(KBL)에서 영구제명을 당했다. 연합뉴스 | ||
그런데 같은 기간 정상급 용병선수 두 명의 에이전트들이 비밀리에 한국으로 들어와 10개 구단을 돌았다. 올해 용병드래프트에서 10개 구단 전체가 자신들의 선수에게 일정액 이상을 사전에 보장하지 않으면 아예 드래프트에 나오지 않겠다는 으름장과 함께 뒷거래를 요구했다.
코트 폭력으로 준엄한 질책을 당하고 있을 때 이면에선 한국농구계를 우습게 보고 뒷돈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용병에 웃고 울고, 또 무시하고 무시당하는 기형적인 한국농구의 용병세계를 제대로 보여준 이번 사건을 살펴본다.
파스코 폭력사건이 터지자 여론은 두 방향으로 흘렀다. 처음에는 고분고분하던 용병들이 자신이 팀 성적을 좌지우지한다는 현실을 깨닫게되면 서 상전이 돼 막무가내식으로 행동한다는 비난론, 그리고 워낙 기량을 월등한 까닭에 반칙 전문 선수들이 국내 선수에게 하지 않는 치졸한 반칙을 가한다는 동정론까지 제기됐다. 어느 쪽이 정확할까. 나름대로 후자도 일리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전자쪽으로 무게가 실린다. 실제로 농구계 최일선에서 일하는 구단 관계자들은 대체로 용병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하는데 KBL과 각 구단이 팀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개혁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A 구단의 직원은 “용병 선발이 한 해 성적를 좌우하는 까닭에 각 구단은 비시즌에 총력을 기울인다. 알려진 바와 같이 용병 연봉상한제(팀당 2명 합계가 27만 달러를 넘지 못한다)는 의미가 없어졌다. 시즌 중에도 비위를 맞추고, 또 여의치 않을 경우 교체를 생각해 항상 외국과 에이전트들에게 안테나를 맞춰야 한다”고 토로했다.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전자랜드의 최희암 감독은 “원래 스포츠라는 것이 열심히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나오는 것이 매력인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 프로농구는 그렇지 않다. 전술연구나 한국선수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것보다 용병 하나 잘 뽑는 게 성적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용병들 때문에 코트에 나설 기회조차 못 잡고 있는 선수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때 국가대표급 센터로 좋은 활약을 펼치다 현재는 은퇴하고 농구와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는 B는 “용병이 한 명만 없어도 국내 선수 3명이 산다. 한국농구에서 ‘빅맨’이 사라지고 국제경쟁력마저 약화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키가 큰 유망주가 있다면 나부터가 농구 대신 배구나 다른 종목을 하라고 권할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몇몇 무명의 ‘빅맨’들이 헐값에 일본 프로농구로 팔려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 퍼비스 파스코 | ||
한국에서 용병들의 보수는 월 2만 달러 수준. 6개월로 계산하면 12만 달러로 세계적으로 3등급 정도에 해당한다. 최고봉인 NBA(미국프로농구)는 최저연봉이 40만 달러선이고, 2등급인 스페인 그리스 프랑스 등의 유럽리그에서 10만~30만 달러가 주어진다. 월 1만 달러 이하는 4등급 이하로 분류된다.
하지만 실제 한국의 용병들은 30만 달러 이상을 받는 용병이 수두룩하다. 50만 달러를 넘게 받는 선수도 제법 있고, 심지어 100만 달러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숙식은 물론이고 가족 초청비까지 제공하는 편의제공을 따지면 한국은 NBA에 다음 가는 수준으로 용병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이렇게 뒷거래와 함께 세계적인 수준으로 몸값이 뛰었는데 갑자기 다시 드래프트를 하게 됐으니 해당 용병들과 에이전트들이 부산해진 것이다. 2007년 드래프트는 10개 구단이 각각 10%의 확률로 추첨을 통해 용병을 선발한다. 한국에서 뛰었던 용병들도 다시 드래프트에 응시, 선택을 받아야 한다. 자신을 찍은 구단으로부터 원하는 만큼의 뒷돈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낙점을 받고도 계약을 하지 않으면 다시는 달콤한 한국코트에 올 수 없다. 그래서 에이전트들이 나서 10개 구단 모두로부터 ‘뒷돈’ 확약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드래프트에 나오겠다는 뜻이다. 한국 프로농구계 전체가 외국의 특정선수에게 협박을 받는 비극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C팀과 D팀의 용병이 이 같은 행보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은밀한 거래는 접촉 자체가 알려지면 곤란하기 때문에 10개 구단이 이들에게 어떤 약속을 했는지는 파악할 수 없다. 많은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특급 선수가 드래프트에 나온다면 어느 정도 밀약에 성공한 것으로 사후 추정할 수 있다. 두 선수 외에도 한국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외국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개혁안은 없는가. 팬들의 눈높이가 올라간 탓에 용병제도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많은 농구인들이 더 늦기 전에 ‘2명 보유에 1명 출전’이나 아니면 ‘완전한 폐지’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자는 경기에 대한 용병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것과 함께 팀 내부적으로 시즌 중 큰 피해없이 용병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완전폐지론은 프로농구 이전 용병이 없던 농구대잔치 시절 농구인기가 더 좋았고, 또 프로농구를 11시즌이나 치르면서 팀간 전력 차도 크게 줄었기 때문에 용병없는 농구도 문제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원래 용병제도는 KBL 출범 당시 선수부족과 전력 평준화를 위해 도입됐고 국내 선수 보호를 위해 5년 후 폐지한다는 단서까지 달고 있었다.
김유택 XPORTS 해설위원은 “용병제도가 곪을 대로 곪았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데려오는 여자프로농구도 2007년 여름리그 때 용병을 없애기로 했다. 농구의 인기부활을 위해서라도 용병들의 영향력을 줄이고, 지나친 뒷거래문화를 없애는 식의 확실한 제도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병철 객원기자 einer6623@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