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갈등의 시발점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 벨>이 자리하고 있다.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다이빙 벨>이 상영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세월호 침몰을 다뤘던 <다이빙 벨>은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부제로 했다. 부제가 말해주듯이 영화는 세월호 사고 당시의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은 “영화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면 안 된다”며 해당 영화를 상영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부산영화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상영을 강행했다.
이후 영화제가 끝나자마자 부산시는 이에 대한 지도감사에 들어갔다. 2015년 9월엔 감사원이 부산영화제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용관 집행위원장 등에 대한 검찰고발을 권고했다. 부산시는 3개월 후인 12월 이용관 부산영화제 전 집행위원장과 전·현직 사무국장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갈등은 올해로 접어들면서 더욱 증폭됐다. <다이빙 벨> 상영 논란, 영화제에 대한 감사,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대한 고발 등 일련의 흐름을 지켜보던 영화인들이 시를 성토하며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서울과 부산에서 성명발표와 회견이 잇달았고 SNS상에는 시에 대한 비판이 홍수를 이뤘다.
이런 가운데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난 2월 기자회견을 갖고 당연직이던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과 거의 때를 같이 했다. 갈등의 양쪽 핵심축의 동반사퇴로 꼬인 실타래를 풀어보자는 것이 시가 내세운 표면적인 목적이었다.
하지만 영화인들은 이를 그렇게 읽지 않았다. 단지 시장이 조직위원장을 사퇴한다고 해서 영화제에 대한 시의 간섭과 자율성 침해가 해결된다고는 보지 않았다. 이에 영화제 측은 국내 유명 영화인 68명을 자문위원으로 새롭게 위촉했다. 여기에는 박찬욱·류승완·최동훈·하정우·유지태 등 국내를 대표하는 감독과 배우들이 대거 포함됐다.
서병수 부산시장(왼쪽)과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법원의 결정이 나오자 ‘부산영화제 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8일 영화제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이를 전면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부산시는 같은 날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영화제 개최를 고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갈등이 최고조를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또한, 부산시 김규옥 부시장은 지난 20일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영화인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야 할 시점에 언론플레이나 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김규옥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현재 상황이 부산시가 영화제를 의도를 갖고 탄압하려 한다는 틀 안에서만 인식되고 있다”며 “영화제를 보이콧할 만큼 쟁점이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제 내부 혁신을 위해 이용관 위원장을 재위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통해 시의 변화된 입장을 조금이라도 기대했던 이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른 시일 안에 합의를 이뤄 영화제 준비를 위해 매진하겠다는 게 시의 입장이었으나 갈등을 봉합할 만한 전향적인 자세에 대한 언급은 이날도 역시 없었다.
사태를 지켜보는 시민들과 지역오피니언들은 착잡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지방에서 수도권을 압도하는 거의 유일한 콘텐츠이자 부산을 대표하는 수식어인 부산국제영화제를 시가 나서 나락으로 끌어내리려 한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현재 중재그룹으로 활동 중인 경성대 연극영화학부 A 교수는 “영화제의 진정한 주인은 부산시민, 더 나아가 국민”이라며 “지금 부산시가 해야 하는 것은 지원을 핑계로 간섭하려는 게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원이다. 자식처럼 힘들게 키운 부산국제영화제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