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감독도 얼굴을 찌푸리는 일이 잦아졌다. 도통 웃는 낯을 대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일부 취재진과는 오해가 쌓이기도 했다. 최고 부자 구단의 한국시리즈 2연패 팀 감독이, 비록 현재 성적이 조금 나쁘다고 해도 이처럼 불편한 얼굴인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 몸이 아프니 마음도…
지난 4월 선동열 감독은 간단한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간이 매우 나쁘다는 판정을 받았다. 흔히 말하는 ‘γ-GTP’가 정상치를 훨씬 웃돈 것이다. 나름대로 조심했는데도 이 같은 검진 결과가 나오자 선 감독은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난해에도 선 감독은 개막전 즈음에 간 수치가 높게 나와 20년 가까이 피워온 담배를 끊고 한동안 술도 멀리 했다. 두주불사 스타일의 선 감독은 한번 술자리에 앉으면 말술을 마시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지난해에는 7월말 후반기가 시작될 때까지 거의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 결과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홈인 대구구장에서 경기가 열릴 때면 일찌감치 야구장에 도착해 운동장을 20~30바퀴씩 돌며 운동을 한 덕분이기도 했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다시 술을 마셨지만 예전에 비하면 횟수와 양이 훨씬 줄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올해 또다시 간 수치가 심각할 정도로 나빠졌다는 얘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까짓것 술 안 마시면 되지 않는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선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팽팽한 승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술자리에서 풀곤 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유쾌하게 술잔을 기울이던 것이 좋았는데 이걸 못하니 되레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상황을 잘 모르는 외부인이 선 감독과 더그아웃에서 만나면 “왜 저렇게 무뚝뚝하고 인상을 찌푸리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을 하기도 했다.
* 진만이도 영수도 빠지고…
요미우리 이승엽, 뉴욕 메츠 박찬호 등은 모두 완벽주의자다. 항상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는데 이게 잘 안 될 경우 속앓이를 많이 하는 편이다. 선동열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현역 시절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의 선발투수, 극강의 마무리투수로 활약한 덕분인지 감독을 맡은 뒤에도 항상 최고를 추구해왔다.
2004년 말 선 감독이 사령탑으로 데뷔했을 때 “재임기간 5년 중 세 차례 정도 한국시리즈 우승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때만 해도 “그게 가능할까”, “한국시리즈 우승은 하늘이 도와야 한다는데” 같은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2년 연속 삼성이 우승을 차지하자 의심의 눈초리가 싹 가셨다.
재미있는 것은 선동열 감독도 목표를 상향조정했다는 사실이다. 선 감독은 지난 겨울 사석에서 기자에게 “내친김에 5년 연속 우승을 해버릴까”라며 농담조의, 하지만 뼈있는 말을 했다. 그 후 지난 1월 초 선수단이 첫 훈련을 재개할 때 “올해도 우승!”이란 구호를 외치게 했다. 진짜 5년 연속 우승에 대한 꿈이 있다는 게 확인된 자리였다.
그런데 올시즌이 시작되자 예상 밖으로 삼성은 삐거덕거리며 성적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유격수 박진만, 외야수 김창희 등 주요 전력이 줄줄이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했고, 배영수가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은 뒤 빠지면서 선발 로테이션도 힘을 잃었다. 뜻밖의 변수들이 돌출하자 완벽주의자 선 감독의 스트레스가 더 심해진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게다가 삼성은 최고 부자 구단이라는 특성 때문에 다른 팀으로부터 야구 외적인 공격을 많이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LG 김재박 감독이 “삼성은 돈으로 선수를 끌어 모아 우승한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공격에 해당된다.
선 감독은 팀 전력 약화에 본인의 건강 문제, 게다가 외부의 흔들기까지 겹쳐 다소 지쳐 있다. 올시즌은 선 감독에게 길고 험난한 한 해가 될 듯하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