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미 LPGA투어 CJ나인브릿지클래식에서 해설자로 나온 박세리. | ||
그런데 정작 박세리의 모국인 한국은 썰렁하기만 하다. 소속사인 CJ는 박세리 측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축하 행사를 준비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올해 계약기간이 끝나면 박세리가 금액을 크게 낮추지 않는 한 재계약도 하지 않을 방침이다. 대대적인 축하가 아닌 ‘소속사와의 이별 예행연습’이 돼 버린 박세리의 ‘쓸쓸한 명예의 전당 입회’를 살펴봤다.
박세리의 매니지먼트사인 세마스포츠는 몇 달 전부터 CJ 측에 6월 한국에서 명예의 전당 입회 기념식을 거행하자고 요구했다. 교과서에도 실린 박세리가 아시아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한국 골프사에 길이 빛날 쾌거인데 최소한 작은 호텔연회장에서라도 기념식을 해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골프계를 비롯, 사회 각계의 주요인사 등을 초청한 조촐한 규모로 예산도 수천만 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CJ 측은 이를 거절했다.
CJ스포츠마케팅부의 A 씨는 “요즘 회사가 많이 어렵다. 해외 출장도 최소화하고 있어 맥도널드챔피언십 현장에 우리(CJ직원)가 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당연히 한국에서 크게 축하행사를 갖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에 세마스포츠의 이성환 대표는 “이해할 수 없다. 당분간 한국 골프에서 이보다 더 큰일은 없다. 안하면 욕먹기 딱 좋고, 또 홍보 측면에서도 최고의 효과가 있는 일인데 왜 소속사가 이를 마다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엄청난 돈이 지출되는 것도 아니다. TV광고 하나 내보내는 것보다도 적게 드는데 말이다”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마침 박세리는 맥도널드LPGA챔피언십 후 1주일간 대회가 없어 잠시 귀국할 예정이다. 명예의 전당 입회와는 상관없는 ‘깜짝 이벤트’도 있고, 휴식과 함께 고국팬들과 골프인생 최고의 목표를 달성한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그런데 CJ의 거부로 한국에서는 축하의 장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박세리 측은 현재 한국에 조용히 들렀다가 휴식만 취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안과 다른 스폰서나 혹은 개인 돈을 들여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를 치르는 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6월 8일까지 불과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CJ 측에 “박세리의 소속사로 어떤 입회 축하행사를 준비 중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스포츠마케팅부의 A 씨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계열사들과 협의 중으로 명예의 전당 입회 기념 특별세일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본다”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골프팬들은 박세리 덕에 대형슈퍼나 마트에서 CJ의 생활용품을 평소보다 싸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푸대접에 대한 배경으로 CJ 측은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점을 계속 강조했다. 더 나아가 올해 말 박세리와의 재계약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일찌감치 예고하기도 했다. CJ는 2002년 말 연간 30억 원(인센티브 10억 원 포함)에 5년간 박세리를 후원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올해가 마지막 해로 재계약을 맺거나 박세리를 떠나보내야 한다.
이에 대해 박세리 측은 섭섭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부친 박준철 씨는 “그동안 CJ의 후원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하지만 더 이상 박세리를 필요치 않다면 부담주지 않고 떠나줄 생각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이나 모양새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성환 대표도 “CJ와의 의리를 생각해 끝까지 재계약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명예의 전당 입회 축하행사는 너무 심했다. 누가 봐도 섭섭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박세리가 CJ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CJ가 골프 인생의 최대 목표를 달성한 박세리를 버린 셈”이라고 강조했다.
세마 측은 내심 CJ가 박세리를 버려도 이를 대신할 좋은 스폰서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스폰서가 없다면 2002년 초 삼성과 결별한 후 소속사 없이 지낼 때처럼 차분히 기다리겠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골프로 많은 돈을 번 만큼 돈 욕심을 내기 보다는 안정적인 투어생활과 은퇴 후 프로젝트를 함께 할 기업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박세리는 더없이 축하를 받아야할 이번 명예의 전당 입회와 축하행사 기획 과정에서 CJ의 속내를 확실히 알았고, 최악의 경우 결별까지 고려하게 된 것이다.
한편 박세리는 최근 미국의 한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생의 목표였던 명예의 전당 입성이 눈앞에 왔다고 생각하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쁘다. 앞으로는 아직 한 번도 달성하지 못한 올해의 선수상, 그리고 그랜드슬램 등을 새로운 목표로 삼겠다”라고 말했다.
미국 무대에서 올해가 꼭 10년째인 박세리는 미LPGA의 현역선수 규정상 맥도널드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치는 순간 10번째 시즌을 뛴 것으로 인정받는다. 명예의 전당 입회 의무기간을 채우게 된 것이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박세리는 2003년 10월 삼성월드챔피언십 1라운드 후 18번홀 그린에서 명예의 전당 입회 기념식을 가진 아니카 소렌스탐과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입회를 축하할 예정이다. 소렌스탐은 그린 위에 카펫을 깔고 샴페인을 터뜨렸지만 박세리는 미LPGA의 간단한 발표만이 있을 뿐이다. 대신 1라운드 후 미디어텐트에서 세계 명예의 전당 관계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공식 기자회견을 갖는다.
유병철 스포츠 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