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독일월드컵 무대를 누빌 23명의 태극전사들이 공개됐던 지난해 5월 중순경, 평소 인터뷰가 어렵기로 소문나 있던 김남일과 전화 인터뷰를 나눴다. 당시 김남일은 월드컵이란 중차대한 ‘이벤트’를 앞두고 김보민 아나운서와의 열애설이 불거지면서 언론 접촉을 최대한 피하던 시기였다. 기자가 여러 차례 문자를 보내도 묵묵부답이다가 급기야 협박성(?) 문자를 날리자 전화를 해온 상황이었다.
김남일은 “왜 이렇게 통화가 어렵냐”는 기자의 항의에 “너무 힘들다”며 당시 심경을 토로했다. 월드컵에 쏠릴 관심이 선수의 사생활, 그것도 열애설로 모아지는 것이 부담스럽다 못해 화가 난다는 것이었다.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된 데 대한 소감과 각오를 듣는 인터뷰라 열애설에 대해선 간단히 얘기를 나눴는데 김남일은 “속 시원히 밝히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면서 “지금은 누구랑 만난다는 얘기보다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그로부터 1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난 6월 5일 오후 1시. 김남일은 사연 많았던 열애설의 주인공 김보민 KBS 아나운서와 약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약혼한다는 사실은 약혼식에 참석한 가족들 외엔 아무도 몰랐다. 수원 삼성은 물론 KBS 아나운서실에서도 약혼식 당일에서야 측근을 통해 소식을 들었을 정도다.
6월 5일 김남일이 소속된 수원 삼성과 김보민의 KBS 아나운서실 풍경을 관계자들의 설명을 토대로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김남일은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삼성 구단에 약혼식 한 시간 전에 자신의 약혼 사실을 알렸다. 이미 구단을 통해 이틀의 휴가를 받은 김남일은 이운재 이관우 외엔 약혼 사실을 숨기며 비밀리에 약혼식을 준비했고 차범근 감독은 뒤늦게 구단의 보고를 받앗다. 삼성에선 발 빠르게 직원을 약혼식장으로 보내 사진 촬영을 지시했다. 한두 시간 후면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 사진이라도 확보해 두지 않으면 그 불을 끄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 지난 5일 김남일과 김보민 아나운서의 가족 상견례를 겸한 약혼식이 비밀리에 치러졌다. 사진제공=수원 삼성 | ||
KBS 아나운서실은 순간 ‘설마’ ‘세상에나’ ‘그럴 리가’라는 단어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며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이전 노현정의 깜짝 결혼 발표로 큰 홍역을 치렀던 KBS에선 이번 김보민 아나운서의 약혼식에 무조건적인 축하 인사를 건넬 수 없는 입장이 돼 버렸다.
아나운서실의 한 관계자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나운서실 실장에게는 미리 보고를 하는 게 조직의 특성상 옳은 처사다. 휴가를 낸 것까지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유명 선수랑 약혼식을 올리는데 그 후폭풍이 어떨지 뻔히 알면서 비밀리에 약혼식을 거행했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면서 “약혼식 자체는 분명 축복받을 일이지만 조직의 룰을 어기고 언론을 통해 약혼식이 알려진 건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김보민 아나운서의 약혼식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겠지만 보고 절차를 무시한 행동에 대해선 어떤 형태로든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편 평소 김보민 아나운서와 절친하게 지낸 한 선배 아나운서 A 씨는 “나한테는 지난 주에 미리 귀띔을 했었다. 다음 주 정도에 약혼을 할 것 같다고. 그래서 진짜 축하할 일이라고 말하면서 하루 빨리 아나운서실 실장에게 보고하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휴가를 냈는지 모르겠다”라고 의문을 나타냈다.
A 씨는 김보민 아나운서가 3년여 동안 김남일과 사귀면서 마음 고생을 무척 많이 했다고 한다. 특히 최근에 일었던 결별설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며 마음 아파했다는 것.
“누구보다 김보민 씨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악성 소문도 많았고 무엇보다 가족, 특히 부모님의 반대가 컸다고 들었다. 부모님의 최종 승인이 몇 주 전에 난 걸로 들었다. 그 신호가 5월 26일 포항에서 있었던 수원 경기에 김보민 씨가 어머니를 모시고 경기장에 나타난 일이다. 그때 김남일 선수와 김보민 씨 어머님이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 것으로 알고 있다. 김보민 씨 입장에선 열애설이 나돌 때 속 시원히 밝힐 수 없었던 이유에 부모님의 존재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김보민 아나운서는 지난 7일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녹음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3년의 열애기간에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이 사람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스타뉴스 인용)고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털어 놓았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