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로 프로 18년차인 현대 유니콘스의 김동수가 홈구장인 수원야구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포수 미트를 잡고 쭈그려 앉기 시작해, 어느새 30년을 포수로, 프로에서만 18년째 안방살림을 꾸리고 있는 현대 유니콘스의 포수, 김동수를 수원경기장에서 만났다.
그것은 운명?!
초등학교 시절, 형과 재미삼아 캐치볼을 했다는 김동수. 아버지가 사주신 포수 미트와 투수 글러브를 들고 형제가 집 앞 골목길로 뛰쳐나간다.
형: 동수야, 너 뭐 할 거야? 공 던질래, 받을래?
김동수: 형이 던져. 내가 받을게.
그렇게 김동수는 포수 미트를 처음으로 손에 넣는다. 그때부터 포스 미트를 들고 다니던 김동수. 다니던 화곡초등학교에 우연인지 운명인지 야구부가 창단된다. 드물게, 아니 유일하게 포수 미트를 가지고 다니던 김동수를 당시 화곡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이 불러 세운다.
감독: 너는 왜 글러브가 아니라 포수 미트를 가지고 다니니? 너 야구할래?
그렇게 김동수는 포수가 되었다. 한 경기당 쭈그려 앉았다 일어서기를 평균 150번, 프로에서만 18년을 해온 김동수지만 단 한 번도 포수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한다.
프로 18년차 포수의 습관
김동수는 지금도 경기가 끝나면 아무리 피곤해도 노트와 펜을 꺼내 든다.
김동수: 양준혁, 초구에 강하다. 이대호도 초구에 강하지. 이 친구는 변화구에 약하고, 요 친구는 초구는 거르고 번트를 댄다.
꼼꼼한 김동수의 메모는 다음 경기에 그대로 반영된다. 경기 시작 30분 전, 선수와 코칭스태프 미팅 시간.
정명원 투수코치: 한화타선 요즘 불났다. 조심해야 될 거다, 수경아.
금광옥 배터리코치: 동수! 한화 타선, 지난 번에 어땠지?
김동수: 누구는 변화구에 약하고, 누구는 초구에 꼭 배트가 돌죠.
김수경: 선배님,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야구라는 게 본디 생물의 특성을 가진 경기라 한 번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데이터도 맞다가도 안 맞는등 100% 믿을 수는 없다고 한다. 경기 전, 상대타자들의 컨디션을 살펴보는 것 또한 대한민국 최고의 볼 배합과 투수리드를 자랑하는 포수, 김동수의 오랜 습관이다.
18.44m, 포수와 투수 사이
마운드에서 홈플레이트까지 거리는 18.44m. 포수와 투수 사이의 거리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0.3초의 비행을 하는 거리이기도 하다. 공의 비행을 조종하는 사람은 투수지만 투수를 리드하는 사람은 포수다. 그래서 포수는 투수와 18.44m보다 가깝게 지내야 한다.
▲ 연합뉴스 | ||
포수는 경기의 무게중심
90년 LG로 입단하던 해에 골든글러브 신인상을 포수 최초로 받은 김동수는 90년대 LG에서 공격형 포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그리고 FA로 2000년 삼성, 트레이드로 SK, 그리고 2003년 SK는 FA가 된 김동수를 방출한다. 야구낭인 전락 직전에 현대가 김동수에게 손을 내민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동수는 백업으로 1~2년 뛰다가 코치로 나갈 생각이었다.
“근데, 주전 선수가 개막전 딱 하루 뛰고 이튿날 다치는 바람에 제가 그 자리를 꿰찼어요. 그리고 10년 넘게 한 번도 못해본 3할대 타율도 기록하고, 우승도 했죠. 야구도, 인생도 참 희한해요.”
지금도 든든한 백업 포수가 없는 김동수는 좋은 포수의 조건으로 차분한 성격을 꼽는다. 한 경기에도 열두 번 더 요동치는 경기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홈플레이트에서 무게중심을 잡을 줄 알아야 경기의 흐름을 보는 눈이 트인다는 것이다.
불혹의 나이에 생긴 욕심
올해로 마흔. 불혹의 나이가 된 김동수로서는 약해진 어깨와 떨어지는 도루저지율이 못내 서글프다. 그래서 김동수는 더더욱 ‘선 안에서’ 야구를 더 오래 하고 싶은 욕심밖에 없다. 30년을 운동장에서 해왔던 플레이를 접고, 이제는 서서히 선 밖으로 나가야 될 시기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거의 끝에 와있다. 그래서 선 안에 있는 지금, 더 잘하고 싶다. 젊었을 때는 매번 시합 때마다 긴장했지만 언제부턴가 그 긴장감, 떨림, 두근거림이 없어졌다. 야구는 이제 내 생활이다. 직장인들이 출근해서 컴퓨터 켜듯 나는 야구장으로 출근해서 야구를 한다.”
야구로 밥벌이를 하는 생활인 김동수. 선 안에서 더 오래 야구를 하고 싶은 야구선수 김동수. 어쩌면 다섯 번째 유니폼을 바꿔 입을 지도 모를 김동수는 현대 유니콘스의 상황에 대해 ‘누구에게도 어떻게 해달라고 조를 수 없다’고 말한다. 그저 선수들 모두가 자신들의 밥벌이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실력을 갈고 닦고 조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면서도 2003년 현대가 김동수를 구원했듯, 2007년 누군가가 현대를 구원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건 아닐까. 김동수도, 현대 유니콘스도 프로야구라는 ‘선 안에서’ 오래오래 뛸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
p.s> Story on 베이스볼 포지션 정의 사전
김동수 왈: 포수?! 머리를 조금 더 쓸 뿐, 전부를 위한 하나다.
김은영 MBC라디오 아이러브스포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