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지난 4월 SK에서 두산으로 전격 트레이드된 연습생 출신 이대수. 갑작스런 이적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수비와 타격으로 호평받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새집증후군’은 없다!
지난 4월 29일, 이대수는 두산으로 전격 트레이드됐다. 아직 계약이 남아있는 인천의 전셋집 정리도 못한 채 서울로 급히 이사를 왔다. 새 집, 낯선 집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솔직히 처음엔 섭섭했죠. 8년이나 땀 냄새 같이 맡으면서 뛴 동료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웠지만 새로운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싫지만은 않았어요.”
실제로 이대수는 두산 이적 후 6월 12일 현재, 29게임에 나서 타율 0.275에 11타점을 기록하면서 안정된 수비로 군대 간 손시헌의 유격수 공백을 완벽하게 메워주고 있고 덤으로 방망이도 솜씨 좋게 휘두르고 있다.
“새집증후군 같은 건 없어요. 백업이든 스타 선수든 경기에 나선 선수에게 믿고 맡기는 김경문 감독님 스타일도 좋고, 선수단 분위기도 좋구요.”
1500만 원짜리 연습생 출신
청어가 많이 잡혀 신라시대 때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는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신시도(島)가 이대수의 고향이다. 청어만큼이나 푸른 꿈을 안고 초등학교 4학년, 고향 섬을 떠나 군산으로 야구 유학에 오른 이대수. 하지만 8년이 지난 1999년 군산상고 3학년 졸업 무렵, 이대수는 갈 곳이 없었다. 친구들은 대학을 간다, 프로로 간다, 각자의 길을 정했지만 이대수를 불러주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가 이대수를 연습생, 신고 선수로 선발한다. 하지만 쌍방울은 재정문제로 그 해에 해체되고 SK로 재창단되면서 이대수는 방출된다. 섬으로 돌아가 배를 탈 생각이었던 이대수에게 다시 기회가 온 것은 2001년. 선수층이 얕았던 SK가 다시 이대수를 연습생으로 불러들였다. 그의 연봉은 1500만 원. 다른 선수들은 이미 능력을 인정받고 정식계약으로 입단했지만 연습생으로 입단한 이대수는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과 실력과 열정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리고 2003년 마침내 1군 데뷔, 2006년 처음으로 풀타임으로 뛰었던 이대수.
|
||
“오라는 데도 없고 이제 야구를 그만둬야 하나 싶었죠. 뒷바라지 하느라 배타고 왔다갔다 고생하신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그때가 제일 속상했어요.”
촌놈, 출세했다!
그 덕분일까. 2002년 달랑 세 경기에 출장해 아무 기록도 내지 못하던 이대수는 처음으로 풀타임을 소화했던 2006년, 122경기 387타수 98안타 46득점에 타율 0.253를 기록했다. 처음 맛보는 기대와 설렘으로 전지훈련을 떠난 이대수. 하지만 공을 너무 많이 던져 팔꿈치 통증을 느낀다. 이제 막 1군에서 시동을 건 입장이라 김성근 감독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통증이었다. 그래서 팔꿈치를 들어 송구를 해야 하는 오버-스로 기본기를 비켜 사이드암-스로로 송구를 한 것이 화근이 되어 이대수는 전지훈련 도중에 짐을 싸야 했다.
SK 유격수 주전자리는 어느새 정근우가 자리를 잡았고 4월 24일 마산 롯데전에서 실책을 저질렀던 이대수는 자신의 타순에서 대타로 교체된다. 그리고 4월 29일 두산으로 전격 트레이드.
“촌놈이 출세했죠. 제가 야구 안 했으면 어떻게 서울까지 왔겠어요. 섬에서 군산, 군산에서 인천, 인천에서 다시 서울까지 파란만장 서울 상경기죠. 그리고 이제는 성공기를 쓰고 싶습니다.”
|
||
삼성과의 5 대 5 동점이던 8회 2사 만루에서 역전 2타점 끝내기 안타를 터뜨린 이대수. 동료들의 축하인사를 뒤로한 이대수는 뿌듯한 마음으로 서울 선릉역 근처에 마련한 새집으로 퇴근했다. 아무도 없는 빈 집, 불 꺼진 집에 스위치를 올린다. 81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스물 일곱 살. 잠실야구장이라는 새집증후군은 없지만, 솔로증후군은 있는 것일까.
“혼자 밥 먹을 때는 결혼하고 싶죠. 하지만 군대문제가 아직 해결이 안돼서 그게 해결이 될 때까진 결혼 못해요. 솔직히 욕심 같아서는 올림픽에 나가고 싶어요. 나가기만 하면 죽기 살기로 할 텐데 ^^; 하지만 지금 당장은 두산에서 뿌리내리는 게 시급해요.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요.”
‘그’ 시작은 1991년
당시 신시도초등학교 4학년이던 이대수는 군산에서 열린 ‘공 던지기 대회’에 출전한다. 너무 멀리 던진 걸까. 군산중앙초등학교 야구부 부장선생으에게 곧바로 캐치볼 테스트를 받게 된다. 흡족했던 선생님은 이대수의 아버지를 찾아가 야구 입문을 권유한다. 내심 뿌듯했던 아버지, “대수야, 너 야구 안 할래?”
그리고 2007년, 16년이 흘렀다. 연봉 1500만 원 연습생에서 7400만 원의 주전 유격수가 되었지만, 연습생에서 박수 받는 이적생이 되었지만, 매 경기 여전히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은 변함없다. 훈련생도 이적생도 아닌 ‘프로’라는 이유로 말이다.
두산에서 첫 시즌을 보내고 있는 이대수.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복덩이 대접’을 받고 있는 이대수는 들뜨지 않고 한 경기 한 경기에 최선을 다할 작정이다. 훈련생도 이적생도 아닌 ‘프로’라는 이유로 말이다.
김은영 MBC라디오 아이러브스포츠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