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보문산에서 울다
2005년 FA 대박 대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던 이영우는 공익 첫 해, 1년 동안은 정말 야구에 관한 그 어떤 것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공익 동료: 야구 연습, 요즘도 하세요?
이영우: 안하는데요.
공익 동료: 왜요?
이영우: 하기 싫어서요.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꿈으로 가득했던 글러브와 방망이를 보는 것조차도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TV에서 해주는 야구 중계도 당시 이영우에게는 고문이었다. 하지만 습관인지 운명인지 1년, 한 시즌 내내 TV중계로 야구를 챙겨보던 이영우.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일터이자 꿈의 구장인 대전구장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서울에는 남산, 대구에는 팔공산, 광주에는 무등산이 있듯 대전에는 높이 457.6m의 보문산이 있다. 바로 그 보문산에 올라가면 대전 한밭야구장이 보인다. 그래서 공익근무가 빨리 끝나는 주말이면 대전구장이 한눈에 보이는 보문산에 혼자 올랐다고 한다.
“사람도, 공도 개미처럼 보이더라고요. 근데도 어쩜 그렇게 잘 보이는지…. 그게 더 슬펐어요.”
야구를 안 하는, 아니 못하는 2년 동안 휴일이면 보문산에 올라가 쓸쓸히 야구 감상을 하던 이영우가 제대를 한다. 그리고 그토록 그리웠던 대전구장으로 출근해 김인식 감독에게 인사를 드린다.
김인식: 너는 어떻게 된 게 그동안 야구장에 한 번도 안 오냐?
김인식 감독과 한화 이글스의 선후배들은 이영우가 보문산에서 야구를, 그들을 지켜본 걸 알까.
4월에 품은 도둑놈 심보
제대를 하고 몸을 만들며 이영우는 2007 시즌을 준비한다. 1996년, 한화에 입단해 2005, 2006 시즌을 건너뛴 이영우가 딱 열 번째로 맞는 프로야구 시즌 개막을 앞둔 2007년 3월. 현대와의 연습경기에서 2년 만에 처음 한화 유니폼을 입고 대전구장에 선다.
김인식: 이영우! 1번 쳐야지?!
이영우: 예!! ^^;
대답은 했지만 2년 만에 타석에 들어선 이영우는 떨린다. 그리고 들어오는 초구! 깨끗한 중전안타다.
동료들: 와, 2년 쉰 사람 맞아? 초구에 방망이 나가는 거 봐라!
이영우: 나도 신기하다야. 방망이가 알아서 쫓아 나가네! 희한하네~.
새로 태어난 들뜸과 설렘의 힘이었는지 이영우는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4월 타율 3할 6리에 22안타를 기록하면서 예비역의 힘이라느니 하는 농담을 곁들이며 2008 FA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4월에 야구가 잘돼서 솔직히 불안했어요. 10년 동안 야구하면서 4월에 잘 쳐본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근데 더워지기 시작하고 5월 되고 하니까 손바닥 부상도 오고 하향곡선을 타더라고요. 사실 2년 만에 돌아와 잘하려는 것은 도둑놈 심보죠.”
▲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
1996년 입단동기 중 한 명인 KIA의 장성호는 2005년에 이미 4년간 총 42억 원이라는 FA대박을 터트린 이영우의 라이벌이다. 사람들은 장성호가 이영우의 기준이 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영우는 모든 생각과 판단을 시즌이 끝난 뒤로 보류한 상태다. FA에 대한 욕심을 버린 것이다. FA야 시즌이 끝나면 저절로 오는 것이지만 FA 협상 때 큰소리칠 수 있는 근거가 될 성적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달라진 야구장 환경과 투수들의 공을 더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 이영우의 다짐이다. 실제로 대전구장의 인조잔디도 바뀐 상태라, 돌아온 이영우에게 동료들이 한 마디씩 던진다.
정민철: 야, 잔디상태가 예전같지 않다. 공 잘 안 굴러. 아마 안타 10개 정도는 손해본다고 봐야할 걸?
이영우: 대전도 그렇고, 대구구장도 그렇고 진짜 빠질 게 안 빠지더라고요.
이범호: 하지만 투수들은 좋잖아요~ 땅볼 나오면 더블플레이 나오고.
이영우: 허긴, 게다가 요즘 투수들은 직구부터 슬라이더 체인지업까지 못 던지는 게 없더라. 약간만 빗맞아도 땅볼인데다가 잔디 때문에 공까지 안 구르고. 스타일을 좀 바꿔야겠어. 예전엔 이 구장에서는 이렇게 치고, 저 구장에서는 저렇게 치면 답이 딱 나왔는데 연구 더 해야지. 이런 구장에선 공을 띄워야지. 이왕이면 홈런으로다가.
사실 2007 시즌, 이영우는 아직 한 개의 홈런도 때리지 못했다. 그래서 더 더욱 이영우는 맨 처음 야구를 하던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아버지, 아들을 얕봤다?!
이영우가 야구를 처음 시작한 것은 아버지의 전근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남정초등학교 4학년 때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네 야구만 하던 이영우는 ‘야구부’라는 게 따로 있는 줄도 몰랐다. 어린 마음에 신기한 마음으로 구경만 하는데 어느 날 교내 방송에서 야구부를 모집하더란다. 그래서 날름 지원서를 쓰고 학부모 확인 도장을 받기 위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버지: 야구? 네가? 음, 그래 해봐라. 네가 뭐 한두 달 하고 말겠지.
그리고 도장 꽝!! 그 길로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다. 때로는 맞아가면서 했던 야구가 이영우는 단 한 번도 싫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점점 더 좋아지고 재미있다고 한다.
“야구가 하고 싶어서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았던 그 마음, 그리고 공익근무하는 동안 아무도 몰래 혼자 보문산에서 대전구장을 훔쳐봤던 그 마음으로 야구해야죠.”
보문산은 나무꾼이 죽어가는 물고기를 살려줘서 얻은 ‘보물주머니’가 묻혀 있다는 전설 때문에 ‘보물산’으로 불리다가 ‘보문산’이 되었다고 한다. 죽어가는 선수들을 살려내는 한화의 재활공장장, 김인식 감독이 ‘나무꾼’이라면 올해 살아난 정민철 조성민은 살아난 ‘물고기’일까. 돌아온 예비역, 이영우도 보란 듯이 펄떡이는 물고기로 부활하기를 소원한다.
김은영 MBC라디오 아이러브스포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