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종 오해에 시달리고 있는 베어벡 감독. 그러나 대표팀 내부에서는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 ||
구름 위에 있던 베어벡의 명성과 인기는 아드보카트의 후임으로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떨어졌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결승 진출에 실패하며 인기 하락의 신호를 보이더니 최근 K리그 구단과의 불협화음 및 각종 평가전에서의 오락가락한 성적으로 ‘무능한 감독’이란 손가락질을 받았다.
#“정말 좋은 분인데…”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베어벡 감독의 낮은 인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꼼꼼하면서도 자상한 명감독임에도 언론과 여론의 평가가 호의적이지 않다며 안타까워한다. 김진규(전남 드래곤즈)는 최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선수들은 모두 감독님을 존경하는데 대표팀 밖에서의 평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말수가 적은 김정우(나고야 그램퍼스)조차 “베어벡 감독님은 굉장히 뛰어난 지도자”라며 “감독님의 장점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답답해했다.
홍명보 코치도 선수들과 비슷한 의견을 보인다. 홍 코치는 “베어벡 감독한테 배울 점이 참 많다. 한일월드컵 때는 코치와 선수로, 독일월드컵 때는 코치 대 코치로, 지금은 코치 대 감독으로 지내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K리그 무시하지 않는다”
베어벡 감독은 대표팀 소집 일정 때문에 K리그와 각을 세우면서 한국프로축구를 무시한다는 소문에 휩싸였다. “유럽에 있었다면 찍 소리도 못했을 사람이 한국에서 큰소리 친다”는 말까지 들었다.
베어벡 감독이 K리그 일정을 비판하면서 ‘어리석은(stupid)’이란 단어를 쓴 게 마치 K리그에 대해서 ‘어리석은’이란 비판을 가한 걸로 알려지면서 이 같은 소문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베어벡 감독은 “K리그를 무시하지 않는다”라고 억울해 한다. “K리그 일정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일부 선수에 대해 K리그 감독들과 다른 의견을 내놓은 건 맞지만 피 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일하는 K리그 감독들의 고뇌를 이해한다”고 강조한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베어벡 감독과 K리그의 불협화음은 일부 K리그 구단의 이기심에서 나왔다.
베어벡 감독은 지난해 아시안컵 이란전(11월 15일)을 앞두고 경기 7일 전에 대표팀을 소집할 수 있었다. 하지만 K리그 플레이오프 4강전을 고려해 경기 이틀 전인 13일 선수들을 불렀다.
아시안게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회 개막 14일 전 선수소집을 할 수 있었지만 K리그 챔피언결정전(11월 19·25일)을 고려해 수원과 성남 선수들의 대표팀 합류를 늦춰줬다.
베어벡 감독이 규정대로 하지 않고 K리그를 배려한 것은 카타르 8개국 올림픽대표팀 친선대회(2007년 1월 21~31일) 출전을 염두했기 때문이다. 대표 차출을 위한 구단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먼저 양보한 것이다.
규정 준수를 외치던 구단들은 지난달 23일 대표 소집을 앞두고 ‘융통성’이란 말을 들먹였다. 소집 일정을 하루만 늦추면 대표 선수들이 23일 K리그 경기를 뛸 수 있는데 고지식하게 규정을 지킬 필요가 있느냐며 베어벡 감독의 아시안컵 국가대표 소집 방침(6월 23일 최종엔트리 23명 제주도 소집)에 반발했다. FIFA 규정에 국제 대회 본선의 경우 대회 첫 경기 14일 전에 대표팀을 소집할 수 있게 한 조항이 있는 걸 알면서도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구단들이 베어벡의 요구를 수용했지만 이 과정에서 외국인 감독이 국내 프로축구를 무시한다는 소문은 기승을 부렸다. 더욱이 일부 언론은 이런 소문을 선정적으로 다루며 불 붙은 데 기름을 부었다.
#“베어벡의 전술은 완벽하다”
베어벡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뒤 ‘코치로서는 좋았는데 감독감은 아닌 것 같다’는 비난을 많이 받았다. 적지 않은 국내 축구 전문가들은 베어벡 감독의 일천(日淺)한 감독 경력을 지적하며 용병술과 전술을 비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대표팀 선수들은 고개를 젓는다. 이영표(토트넘 홋스퍼)는 지난해 10월 “베어벡 감독 체제에서 대표팀은 상대를 압도하는 경기를 펼쳐왔다”며 “감독님의 전술은 완벽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수들이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찬스를 살리지 못해 전술 문제가 불거지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영표는 베어벡 감독의 용병술에 대해서도 ‘토’를 달지 말라고 했다. “베어벡 감독은 한국선수들의 장단점을 꿰뚫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영표의 말에 홍명보 코치도 동의했다. 지난달 중국 지난에서 열린 A3 챔피언스컵을 현장에서 보면서 “베어벡 감독은 나보다 한국선수들을 더 잘 안다”는 ‘뼈있는 말’을 했다.
#“정치를 하고 싶지 않다”
베어벡 감독은 ‘정치꾼’이란 비난도 받는다. 보잘것없는 경력에도 불구하고 한국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건 대한축구협회 수뇌부에 기대고 언론을 적절히 이용한 덕이란 소리다.
베어벡 감독은 이런 지적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난 축구감독이지 정치가가 아니다”라며 항변한다. 특히 “내 방식이 있는 만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미 없는 만남이나 번드르르한 말 따위는 필요 없다”며 정치적인 움직임이나 말을 할 생각이 없음을 알렸다. K리그 팀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각 구단 감독이나 사장들과 ‘형식적인 만남’이라도 갖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의견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이다.
전임자였던 히딩크, 아드보카트 감독이 ‘축구도 쇼’라는 걸 보여주려 했다면 베어벡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대회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게 될까. 감독의 명운이 달린 그 긴장되는 ‘잔치’가 이제 막 스타트를 끊었다.
전광열 스포츠칸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