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표출
올스타전을 앞둔 7월 15일 KBO는 김호인 전 심판위원장에게 대기 발령을 통보했다. 대신 과거 심판위원장 경험이 있으며 2군에 있었던 황석중 씨를 위원장 대행으로 선임했다. 지난해 1월 13일 전임 김찬익 위원장에 이어 취임한 김호인 위원장은 1년 6개월 만에, 그것도 시즌 중에 보직 해임됐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호인 씨는 자신과 충돌 끝에 2군으로 내려갔던 팀장 출신 허 운 심판원을 KBO가 최근 1군에 복귀시키려 하자 이를 거부하다 경질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즌 중 심판위원장 교체라는 드문 사건이 벌어지자 언론은 내부 갈등의 핵심 인물인 허운 심판원의 최근 1년간 행보를 되짚었다. 이 과정에서 허 심판원이 심판부 갈등에 일정 부분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자 허 심판원은 발끈했다. “우리는 피해자일 뿐, KBO 수뇌부가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면서 심판들의 갈등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추가적인 문제 발생은 없는 듯했다.
그런데 며칠 뒤 허 심판원이 본인의 심경을 피력하는 과정에서 모 언론을 통해 “후배 심판원들 가운데 3분의 2가 나를 따르는데 무슨 세력 다툼이고 파벌 싸움이 되겠는가”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사태가 확대됐다. “당분간 조용히 있으면 일이 좋은 쪽으로 해결될 것”이라며 허 심판원측 사람들을 달래던 KBO는 ‘3분의 2 발언’마저 그냥 넘길 수는 없다고 판단, 책임을 물어 허 심판원에게 다시 2군행을 지시했다. 그러자 허 심판원은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주요 심판원 8명과 2군의 젊은 심판원들을 규합해 모임을 갖고 ‘허운 심판의 1군 복귀, 심판위원장 직선제, 하일성 KBO 사무총장의 공식 사과’ 등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KBO는 7월 20일 오전 허운 심판원과 대기 발령 중인 김호인 전 위원장을 전격 해임한다고 발표했다. 다른 심판원들은 모두 현장으로 복귀했고 일단 사건은 여기에서 끝이 났다.
#갈등의 원인
허운 씨는 오랜 기간 심판부에서 팀장을 맡아오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심판을 잘 보고 강단도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당연히 강력한 심판위원장 후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 초 김호인 씨가 새 위원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이상국 전 KBO 사무총장이 허운 씨에게 위원장을 맡기려는 뜻을 내비치곤 했었는데 신상우 총재와 하일성 사무총장 체제가 들어선 뒤 김호인 씨 쪽 손을 들어줬다는 후문이다. 김호인 씨는 허운 씨 보다 나이가 많은 야구 선배지만 심판 기수는 같다. 자연스레 허운 씨 세력은 불만이 생겼다. “위원장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권력을 차지했다”고 주장했다.
허운 씨를 따르는 세력과 김호인 씨 측 심판원들은 점점 더 물과 기름의 관계가 돼버렸다. 4개 조(A, B, C, D)로 운영되는 심판부는 조마다 팀장 포함 5명으로 구성된다. 같은 조 내에 뜻을 달리하는 심판들이 섞이게 됐으니 지방 출장을 갈 때에도 교통편을 달리 이용하거나 식사도 따로 하는 등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 신상우 총재(왼쪽), 하일성 사무총장 | ||
지난해 말 KBO가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팀장 물갈이를 단행하면서 허운 씨에게 1년간 2군행을 지시했다. 허 씨가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KBO가 고분고분하고 입맛에 맞는 심판들만 중용하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허 씨 측은 또 “김호인 위원장이 1년만 하기로 해놓고 왜 사퇴하지 않느냐”면서 항의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후 KBO는 허 씨와 추종 심판원들에게 연봉 삭감 등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 외로 문제가 커지자 KBO 수뇌부는 허운 씨에게 “3개월 뒤 1군으로 다시 올려주겠다”는 각서를 써줬다. 이 같은 각서가 있는지 몰랐던 김호인 씨 측은 후에 허운 씨의 1군 복귀 움직임이 보이자 “1년간 2군에 있기로 했던 사람을 왜 벌써 올리느냐”며 반발했다. 나중에 각서의 존재를 알게 된 뒤에는 “KBO가 왜 이쪽 저쪽에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해 문제를 키우느냐”는 불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