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세 번째 시즌을 맞은 푸른 눈의 용병 브룸바.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홈런은 말보다 실천
7월 31일, 화요일. 브룸바는 롯데전을 앞두고 있었다. 이번 시즌 브룸바의 팀별 홈런 기록을 살펴보니 롯데전에서는 홈런이 하나도 없었다. 왜 롯데전 홈런이 없을까.
“특정 팀에 약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쪽에서 날 피하는 게 아닐까요? 이대호가 어제 홈런 30개 이상 칠 수 있다, 그런 말을 했다던데 이대호처럼 좋은 선수가 그런 목표를 갖는다는 거 인상적이었어요. 나도 내가 몇 개 칠 수 있는지 안다면 말하고 싶지만 말해놓고 못 치면 어떡해요? 그냥 최선을 다하는 거죠. 근데 이대호는 아직 홈런 30개 이상 쳐본 적 없죠?”
그날 브룸바는 보란 듯이 롯데전에서 23호 홈런을 때리면서 단독 선두에 올라서며 이대호를 따돌렸다(참고로 브룸바는 2004년 홈런 33개를 기록했다).
‘참 좋은 선수’
김시진 감독이 ‘브룸바는 참 좋은 선수다. 외국인 선수 중에 다이빙캐치까지 하는 선수는 없을 거다’라는 칭찬을 했다고 브룸바에게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브룸바는 씨익 웃으며 “내가 아킬레스건이 아직 안 좋잖아요? 수비 나가서 오래 서있으면 다리도 아프고 싫어요. 막말로 공 하나 잡아서 수비 빨리 끝내면 나도 좋고 투수도 좋고 팀도 좋고, 얼마나 좋아요. 근데 그걸 왜 안 잡겠어요? 잡을 수 없는 것도 잡아야죠. 안 그래요?”
어찌나 상큼한 대답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는 중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사실 야구라는 게 투수가 일단 공을 잘 던져줘야 풀리는 거잖아요. 근데 우리 팀 투수들이 7월에 힘들었어요. 한화 같은 팀이 타격 위주의 팀이라면 우리팀은 투수력 6에 타격 4 정도의 팀이라고 생각하는데 투수들이 힘들 때는 타자들이 쳐주면서 스트레스가 나눠지는 거죠. 8월부턴 좋아질 겁니다.”
한국야구를 소개합니다
인터뷰하는 중간 중간, 브룸바는 지나가는 선수들과 손 인사, 눈 인사를 수차례 나눴다.
정수근: 에이~ 브룸바아~
브룸바: 하이, 수근! 날씨 덥지?
정수근: 덥다.
브룸바: 그래도 우리 구장은 바람이 많이 부니까 좀 나을 걸! 수고~ 어? 페레즈야!!
페레즈: 아이쿠 브룸바아~ 이게 얼마 만이냐? 3년 만이니?
브룸바: 3년 만이지. 2003, 2004 시즌 같이 뛰고, 나 일본 가고. 그것도 니가 뛰던 오릭스로 갔다 왔잖아. 너도 한국이 좋지?
페레즈: 그럼 그럼. 우리 공통점이 많아. 진짜 반갑다. 언제 한번 보자!
브룸바: 그래 그래. 더운데 수고하구, 잘해라.
▲ 지난 7월 31일 롯데전에서 23호 홈런을 때리는 모습. | ||
“일단 나는 한국이 참 좋아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 다르니까…. 가장 중요한 건 오픈 마인드죠. 마음을 열어놔야 다른 걸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즐길 수 있잖아요. 아, 그리고 각 팀의 에이스 투수들은 진짜 메이저급이니까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한일전에 대한 생각
일본에서 뛰고 온 경력 때문에 참 많은 사람들이 브룸바에게 일본야구와 한국야구의 차이점을 물었다. 똑같은 질문이 지루할까봐 살짝 비틀어서 물어봤다. 호시노 감독이 얼마 전 방한해서 한국야구를 보고 갔는데, 한국야구가 일본야구를 이기려면 어떤 작전이 좋을지 브룸바에게 질문했다.
“솔직히 실력면에서는 한국이 좀 떨어질 거예요. 하지만 지난번 WBC 때처럼 자신감, 집중력, 정신력으로 꼭 이겼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도 한국이 일본을 무조건 이겨야 돼요. 지난번 WBC 때, 진짜 놀랐거든요. 그리고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얼마나 자랑스러웠는데요. 한국야구가 일본야구보다 한수위라는 걸 이번에도 보여줘서 더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야구에 매력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외국인 선수로 사는 것
올해로 한국 프로야구는 외국인 선수 도입 10년째를 맞았다. 우리나라에서 3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브룸바가 보기에 한국프로야구는 어떨까.
“뭐, 내가 이래라 저래라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한국프로야구는 리그 수준에 비해서 KBO의 홍보·마케팅이 좀 아쉬워요. 지금 현재 외국인 선수 2명 보유, 2명 출전이 내년에는 3명 보유, 2명 출전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뭐, 다들 투수를 한 명 더 영입하려고 하지, 나 같은 타자를 한 명 더 부르겠어요? 개인적으로 투수보다 타자가 들어와서 같이 뛰면 어떨까, 그런 바람?^^;”
엄마는 소프트볼 선수
대부분 남자아이들은 아버지나 형이나 동네 친구들과 캐치볼을 했다고들 하지만 부모님의 이혼으로 브룸바는 소프트볼 선수였던 어머니와 캐치볼을 했다.
어머니: 브룸바. 야구를 할 때는 집중을 해야 된다. 공에 집중하고 방망이에 집중하고… 알았어? 열심히 해야 돼 뭐든.
브룸바의 어머니도 소프트볼에서 외야수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경기가 있는 날, 경기장에 따라가 자신의 아들, 케이든이 그렇듯 뛰고 놀며 엄마와 엄마 친구들의 경기를 보고 캐치볼을 했다. 문득 그 시절이 그리운지 브룸바의 회색빛 눈이 반짝인다.
“야구가 없으면 내 인생은 nothing at all, 아무 것도 없어요. 야구를 했으니까 한국에도 왔죠. 야구를 하면서 여행을 하는 거죠. 한국에도 오고 일본에도 가고….”
야구를 통해 여행을 한다는 브룸바. 그대에게 만약, 한 달간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브라보! 근데 몇 살로 상상해야 되나요? 20대 휴가랑 30대 가장으로서의 휴가는 좀 다르거든요. 지금이라면 무조건 가족들과 함께 하와이, 바하마, 요런 데로 가서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네요.”
한국야구를 사랑하는 브룸바에게 올해는 과연 홈런왕 타이틀이 돌아갈까.
김은영 MBC라디오 아이러브스포츠 작가